웹의 신학 세미나: 7부
2023년 11월 12일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과 교사 여러분,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신학 세미나의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를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의로 교육하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과 저는 우리가 교리의 시대라고 부르는 위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권위를 가지고 말하지 않으며 권위를 회피하고 권위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권위를 오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를 검색하면 모든 국가에서 성경 구절이 좌우로 인용되는 많은 비디오를 찾을 수 있으며 어떤 식 으로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을 펼쳐서 그들이 인용한 구절을 찾아보면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공부해야 하며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의 주요한 것들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고 말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성경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경이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교회 교부들과 교회 어머니들은 침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경전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으며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뿐만 아니라 성경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을 연구하고 완전한 존재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그분의 소통 가능한 속성과 소통 불가능한 속성에 대해 공부해 왔습니다.
이제 다음 공과 시리즈인 다음 두 공과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물론 삼위일체는 흔히 잘못 알려진 것처럼 로마의 발명품이 아니며, 삼위일체는 일부 사람들이 가르치는 반쯤 완성된 것도 아닙니다.
또한 삼위 일체는 소위 예수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만 선택된 것이 아니며, 이러한 그룹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교리가 건전하지 않고 성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문제에 빠지게됩니다.
한 그룹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당신은 아버지를 본 것이므로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예수는 인간, 사람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입니다.
반면에 다른 쪽에서 같은 혼란에 빠졌을 때 그들은 아버지를 예수라고 부를 생각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거꾸로 가서 우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아버지는 한 하나님이고 아들은 다른 하나님 인 것처럼 가장하려고했습니다.
이 고대 이단은 아리우스주의라고 불리며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죄되었습니다.
망루 사회의 추종자들은 아직 실수를 바로 잡지 않았고 실수에 대해 대화하거나 토론 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교훈을 반복하라는 정죄를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신에 대한 고대의 이단을 발견합니다.
창조되지 않은 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창조 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이 이단은 러셀주의 또는 아리안주의라고 불리며 서기 325 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해결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까지 방송에서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시며 이 하나님이 세상과 우주의 창조주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하나님은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으로, 세상을 존재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6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한 분이신 여호와이시다.
그렇다면 신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경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 위격으로 나타난 신격입니다.
골로새서 2장 9절에서 신격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폴이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라도 그가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집니다. (로마서 1:20)
골로새서 2장 9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분(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육신으로 거하시느니라.
육체적으로, 남자로서.
이것은 어떻게 하나님이 동시에 한 하나님 안에서 세 위격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렇게 하면 신이 셋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신명기 6:4에 모순되는 이교도 철학과 비슷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이교도 신비 종교에서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이교도 사상인 세 명의 창조된 신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로마와 그리스의 신비 종교에는 머리가 셋 달린 신이 있었습니다.
시바, 비슈누, 그리고 삼위일체의 제삼자는 힌두교의 삼위일체 신을 구성합니다.
교리로서의 삼위일체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교도 종교에는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의 신은 우리가 다신교라고 부르는 복수의 신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을 세 인격으로 나타내신 분으로 표현한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이제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한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의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성경적 기준으로도 저는 3살입니다.
내가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아닌 다른 누구와도 대화하고 있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러분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있지만 하나의 단위입니다.
그런데도 세 명입니다.
태양 자체는 알파베타와 감마선을 방출하며, 이 광선은 광열과 광선 작용으로 분류됩니다.
이제 아무도 태양이 하나의 단위, 하나의 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확실히 별 세 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은 하나의 단위입니다.
그리고 그의 과학적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볼 수는 있지만 느낄 수 없는 광선을 방출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느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열선,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열선.
그리고 이것들은 물론 광선입니다.
그러므로 광선은 아버지 하나님을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볼 수는 있지만 느낄 수 없는 광선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느껴지지만 보이지 않는 광선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다시 한 번 물속의 삼위일체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이 있습니다.
물은 수증기로 분류되지만, 수증기라는 용어가 세 단위라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산소 1단위와 수소 2단위.
이 세 가지가 별개인가요?
아니요, 물이에요, 하나죠.
하지만 물은 액체 또는 증기 형태로 얼음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얼음이 액체로서 무엇인지 아시죠? 바로 물입니다.
얼음과 같은 액체가 무엇인지 아시죠? 바로 물입니다.
액체가 증기, 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또는 유명한 누군가의 말처럼.
셋에 하나, 셋에 하나. 그리고 가운데 한 명은 저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초심자들은 전혀 모르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설교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교리의 내용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삼위일체는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현상이라는 이 간단한 기본 사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나는 육신의 몸을 가진 육신의 아들로 드러납니다.
영으로서 영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내 안의 영혼이 아버지 하나님의 유형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삼위일체입니다.
물론 그들이 타락했을 때 영이 죽어 죄에 빠져 허물어졌지만, 비록 죽은 영일지라도 여전히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은 하나님이 이미 보여주신 것을 알아내려고 한다면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을 연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너희 길은 내 길이 아니니, 주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는 성경에서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으며,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찬이라는 단어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상상해도 성경에 나오는 단어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휴거라는 단어나 천년왕국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단어가 발견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기술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입증된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어 신격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분명히 보이고, 만들어진 것들은 이해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햇빛과 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근거는 성경에 매우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3장 13절부터 17절까지에 나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우리는 삼위일체가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가 기뻐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구세주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일하시는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한 그림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모든 구성원은 신이지만.
하나님은 세 분으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성령이라고 할 때, 우리는 세 분의 신을 따로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나오는 말씀에서 매우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단수)으로 세례를 베풀어 제자로 삼으라.
이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일치시킬 수 있는 이름은 단 하나뿐입니다.
물론 이 이름은 예수가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일치하는 유일한 이름은 주님입니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과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동일한 행위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을 통해 세례 중생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 38절의 유대인 세례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위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설교자들의 바로 이러한 특성은 현재 경륜의 시대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의 복음이 바울에게 주어지기 전의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8절에는 기독교인이 없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용어는 사도행전 11장 26절까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하고 성전 예배를 드리며 안식일을 지키는 할례 받은 유대인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믿음과 행위가 함께 어우러진 구원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 38절로 여러분에게 구원의 계획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는 구원의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시몬 베드로가 이스라엘 가문에 전하는 오순절 메시지입니다.
14절과 22절, 28절과 36절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열한 제자와 함께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했다. 유대인 여러분, 예루살렘에 사는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내 말을 들으십시오. (사도행전 2:14)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사렛 예수는 너희 가운데서 기사와 표적과 이적을 행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그를 통해 행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2)
주님은 내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고, 주님의 얼굴로 나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2:28)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하나님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동일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라. (사도행전 2:36)
이방인을 위한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성령은 주님이십니다.
아버지는 주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에게 적용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예수님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성경을 읽지 않아서 생기는 실수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성령은 "성령" "보혜사"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또는 "진리의 영"이라고 불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 "엠마누엘" "그리스도" "주님" "주님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예수" "사람의 아들"로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성경에서 아버지는 "여호와", "야", "주님", "주 하나님", "하나님"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절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나오는 바울의 축도를 주목하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창세기 1장을 보면 주님께서 자신을 복수형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들에게 지배권을 주자.
하나님은 복수의 신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복수의 신으로서.
이제 여러분이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죠?
거울을 볼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혼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지옥에서 영혼과 몸을 능히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그런데 왜 둘이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스도께서는 둘이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폴이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육신은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골로새서 2:5)
왜 둘이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히브리서 4장 12절과 13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영혼과 영을 구분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십니다. 그분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피조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벌거벗고 우리가 함께해야 할 그분의 눈앞에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르다면 왜 같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둘은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세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현현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십니다.
그의 몸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영혼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은 분명히 성령입니다.
삼위일체는 기본적으로 신비로 남아 있으며 하나의 그림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나는 실제로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보다 위대하다고 말하는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계시고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실 때만 그러한 견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이후 삼위일체가 영원의 연합으로 무너지는 것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들이 왕을 아버지께 바치고 그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 안에 잠기게 될 때, 창세기 1장 1절 이전과 같이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특정 예시를 통해 삼위일체의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 약간의 빛을 비춰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삼위일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교리가 아니라 성경 교리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며 세 인격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제 삼위일체가 하나의 단위로 행동할 수 있는데, 오늘 수업과 다음 주 수업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연합하여 행동하는 삼위일체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제 성령과 아들과 아버지는 다음 작업에서 하나가 되어 일하십니다.
삼위일체는 창조 안에서 성육신 안에서 구속 안에서 구원 안에서 친교 안에서 기도 안에서 영광과 중생 안에서 일치로 작용합니다.
잠시 후에 그 연구를 다루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게도 동일한 속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파트에서는 삼위일체가 세 가지 작업에서 하나가 되어 활동하는 것을 아주 간략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성육신과 구속의 창조에서.
좋아요. 우선, 창조에서.
이 점에 유의하세요.
창세기 1장 3절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아버지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주 예수 그리스도)과 일치하여 행동하고 있음을 주목하세요.
요한복음 1장 1절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그래서 아들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세상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도 빼놓지 마세요.
창세기 1장 2절에 성령이 수면 위에 임하셨어요.
그리고 창세기 1장 2절을 읽습니다.
어둠이 흑암의 얼굴에 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라.
누가 무엇을 생각하든, 누구의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우위에 있든 상관없이 성경을 명확하게 참조할 수 있습니다.
창조 당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활동하셨다는 것을 가르치는 세 가지 성경 구절이 분명히 있습니다.
좋아. 다음 작전, 화신에서.
그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외아들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주님께서 그 아들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시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가 기뻐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7:5)
아들이 태어나고 예수님을 엠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분명히 아들은 성육신에서 활동적입니다.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성령은 잉태의 매개체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나실 바 거룩한 자가 성령으로 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창조에서 활동하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에서도 활동하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사람이 오신 것입니다. 올바른 신으로부터 온 진짜 인간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평화.
그분은 이곳에 오셔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화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인구의 90%는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니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그를 영접하십시오. (요한복음 5:43)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오는 이 사람은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립니다.
저주의 아들, 죄의 사람, 파괴자 적 그리스도.
그래서 다음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구도를 세우면, 우리가 다른 행성의 생명체와 접촉할 수 있다면 그 생명체가 지구에 내려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우월한 형태의 생명체일 것이라는 환상에 기반한 모든 현대 과학 연구에 반대하거나 스스로를 반대하게 됩니다.
그런 형태의 생명체는 이미 이곳에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먼저 적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후.
알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도 구속을 위해 활동하시며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갈보리의 희생을 받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하물며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히브리서 9:14).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8절부터 12절까지에 나오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완전한 제물의 희생을 받으셨다는 것을 주목하세요.
위에서 그가 말하기를, 율법으로 드리는 희생과 제물과 번제와 죄를 위한 제물은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그것에 즐거워하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자 그가 이르시되, 하나님, 보소서, 나는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그는 첫 번째를 없애고 두 번째를 세우려고합니다. 그 뜻에 따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바쳐 거룩하게 되었느니라. 그리고 모든 제사장은 매일 사역을하고 종종 같은 희생을 드리지만 결코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이 사람은 죄를 위해 영원히 한 번의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았습니다.
아들이 직접 구속의 제물로 자신을 바쳤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우리의 대타로 자신을 자청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한 자를 위해 의로운 자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베드로전서 3:18)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아버지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그분(아들 그리스도)을 죄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사야 53:5)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상하게 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사야 53:10)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구속에 적극적이고 아들도 구속에 적극적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대속물을 바치셨을 때 성령께서 구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인을 위한 완벽한 대속의 속죄.
예수님은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영원한 성령을 통해.
히브리서 9장 14절.
성육신과 구속을 통해 삼위일체가 창조에서 연합하는 행위를 보게 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 주에는 기도와 영광의 친교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삼위일체의 사역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두 성서에 나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속성을 다루는 성구 참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많은 영역을 다룰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속성이 어떻게 아들에게 귀속되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이 성령에게도 어떻게 귀속되는지 알아보세요.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중요도 순서는 맨 위에 하나, 중간 레벨에 하나, 맨 아래에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 가지가 같은 수준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오시면 아들이 두 번째, 성령이 세 번째로 오십니다.
이를 조직신학 또는 교리신학이라고 합니다.
아들은 중생으로 아버지와 관련이 있고, 성령은 행렬로 아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현현하신 아버지라는 것만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그는 영원히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나타난 아버지 하나님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은 저 위에 계시고 아들은 여기 계실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는 그랬습니다.
그가 침례를받는 동안 성령이 그에게 내려올 수 있었지만 그는 영을 측정하지 못했습니다.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그분 안에 육신으로 거하셨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삼위일체는 위대한 신비이며 성경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믿어야만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내어 공부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성육신과 구속을 통해 창조세계에서 삼위일체로서 연합하여 행동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에도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자료의 사본을 원하시면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연중 내내 52주 동안 매주 한 편씩 하나님 말씀의 위대한 교리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게 될 교훈은 그 이상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에 관한 52개의 교훈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과 성경의 천사와 사탄에 관한 52개의 또 다른 공부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주 한 주, 그리고 다음 주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과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