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55부.
2024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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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좋은 하루 되세요.
우리는 지금 기독론, 특히 성령을 다루는 기독론에 대해 매우 긴 일련의 공부를 해왔습니다.
물론 우리는 사탄이 올바른 체계적 신학과 교리 신학의 공압학 연구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귀도 영이며 더러운 영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마가복음 5장).
우리는 또한 이 연구가 천사론과 겹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천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해 사역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역의 영들입니다. (히브리서 1:14)
그래서 지난 12회 동안의 공압학 공부에서는 주로 성령을 다루는 영의 세계를 다루었습니다.
그 부분만 다루고 다른 정신에 대해서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성령을 다루고 있습니다.
컴포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립니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라고도 불립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이 연구와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 사람이 하는 일과 직책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신격과 하나의 신을 구성합니다.
세 가지를 더 공부하면 학생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실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공간 연속체는 세 가지로 나뉩니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입니다.
선물이 있다면 그 선물 뒤에는 무언가가 있고 그 앞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미래가 없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항목입니다.
과거가 없는 미래의 시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미래의 시간이 있다면, 앞을 내다보는 시점이 있고 그 뒤의 시점부터 또 다른 시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신격을 부인하는 사람은 나쁜 영적 개종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신격이라고 불리는 한 하나님을 구성합니다.
또한 함께 있지만 개별적으로 따로 생활하는 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는 성령을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영이시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라는 용어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결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에게 적용된 적이 없습니다.
비록 성육신한 아들이지만,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영원한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이사야 9:6).
하지만 아버지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보혜사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지레 또는 여호와-라파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션에서는 공압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이라는 용어는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결코 적용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이라고 불린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성령이라고 부르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연구를 통해 알게 되셨겠지만.
성령은 신성한 속성을 부여받은 신이십니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너무 철저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령은 신성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원.
편재성.
전능함.
그리고 전지전능함.
구절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는 포즈를 취합니다.
거룩함.
자비.
진실.
그리고 친교.
그는 창작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구원에서.
생명을 주는 일.
그는 새로운 탄생의 저자입니다.
그는 의로움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설득합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는 구별되지만 신성이라는 매우 분명한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제 마지막 시간에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성령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다음 단원에서는 성경 자체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 또는 일련의 연구를 다룰 것입니다.
성경 자체가 공압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영감을 주신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존하신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인류학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인류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으로서의 성경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롭고 독특한 형태의 공부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매우 뚜렷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 단원 이후 다음 몇 단원에서는 성경 자체를 공부할 것입니다.
특히 성경의 영감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보존.
일반적으로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인쇄된 어떤 과학 교과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에 대한 연구도 진행합니다.
앞으로 4~5주 동안의 주제는 성경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공기학 시리즈의 마지막 강의인 성령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주님은 지역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높은 곳에서 권능을 부여받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따라서 성령의 능력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매우 위험한 교차점입니다.
특히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육체가 권력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권력은 부패합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합니다."
독재자가 부패하는 이유는 독재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마귀가 성령을 위조하여 지옥의 권능을 주고 그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매우 위험한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악마나 당신의 육체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 50명 또는 수천 명의 삶을 조사해 보면 완벽하게 알 수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이 경건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을 부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 힘은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능력의 영을 받았다(딤후 1:7)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정신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음성을 듣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이 그의 몸 안에 계십니다.
그는 흙 그릇에 보물을 담았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셔서 그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력 주십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과 에베소서 2장을 주의 깊게 읽어 보세요.
성령은 생명을 주십니다.
생명을 살리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특히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주목하세요.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바울은 어떤 종류의 웅변이나 속임수 없이도 성령의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3~4절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어 말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한 번은 바울에게 은혜가 충분하고 성령이 그를 지탱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떤 종류의 웅변이나 속임수 없이도 성령의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과 청중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회심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 후 자연스럽게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분합니다.
구매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8장 20절에서 마술사 시몬은 이를 시도했다가 큰 질책을 받았습니다.
사이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희의 돈은 너희와 함께 멸망한다.
그러므로 너희의 악을 회개하라 너희가 쓴 담즙과 죄악의 결박에 있는 것을 내가 아노라. (사도행전 8:22-23)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모방할 수는 있지만 위조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열심이나 육신의 노력은 주님에 의해 거부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물론 그들의 파워 모방은 폭죽을 터뜨리기 위해 우주 센터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와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더 무력하고 무력하며 무익하고 불모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며, 이는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십자가가 위법일 때
그리고 십자가의 공격이 멈추면 세상은 멈출 것입니다.
여기에는 계속되는 도시가 없습니다. 그분의 책망을 짊어지고 진영 밖으로 나가자. (히브리서 13:14)
따라서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모방하고 위조할 때, 성령의 능력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핍박과 고난을 가져옵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싶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기도하세요, 폴."
그리고 폴이 말했습니다.
"제가 뭘 부탁해야 하나요?"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고난의 교제, 그의 죽음에 순응하게 하심. (빌립보서 3:10)
두 명의 도둑과 함께 십자가에서 피비린내 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존경받을 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인치시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러 오셨고 영원히 머물러 계실 것입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고 성령을 소멸시키면 그분의 능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전 세션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삼손의 삶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사기 16장 20절에서 우리는 삼손이 한때 성령의 능력을 알고도 그것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읽습니다.
영적인 힘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맛없는 소금과 같습니다.
----14:34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의 발에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13).
이것이 성령에 대해 그토록 많이 이야기한다고 공언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절대적으로 열매가없고 불모지이며 무력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새로 개종한 사람의 구원을 방해하거나 처리 중인 죄인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뿐입니다.
한 가지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피의 속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새로 개종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매우 비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농담이라고 인정하겠지만 농담일 뿐입니다.
이제 성령은 한동안 선생님으로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는 영적인 것에 대해 가장 위대한 스승은 아니더라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입니다.
우선, 성령은 교사로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과 14절에서 우리는 성령만이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읽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스승이자 안내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의 것을 누가 알겠느냐,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영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오직 하나님의 영이시니라. 이제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영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1-12)
성령의 가르침은 오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을 읽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성경을 교정하는 헬라어나 히브리어 교사보다 항상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믿고 성령의 가르침을 허용하는 사람은 지능이 부족하여 본문에 의문을 품고 평생을 보내는 기독교 학교의 교수진보다 항상 더 많은 진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스승이신 성령은 모든 것을 충분하게 해줍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 가르쳐 줄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요한복음 14장 26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기독교인은 조심해야 합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2:27)
문제의 맥락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교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게 주신 은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세요.
사도행전 13장 1절부터 6절까지는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교사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자신을 진실과 진리로 이방인의 교사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르쳐 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상반되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성명서에는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교사를 주셨지만, 그리스도의 몸에는 교사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교사도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읽을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화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르치지 않으시면 제가 여러분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성령은 겸손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은 자신을 증거하거나 자신을 영화롭게 하거나 자신을 말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16:13-14).
성령은 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에서 바울은 진리에 대한 눈과 마음을 열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진리가 거부되는 것을 발견하면 성령을 대적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가리킵니다.
스가랴 12:10에 주목하세요.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외아들을 위해 슬퍼하는 것처럼 그를 위해 슬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맏아들을 위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그를 위해 괴로워 할 것입니다.
성령은 이사야 11장 2-3절을 주목하세요.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머물 것입니다. 지혜와 명철의 영. 조언과 능력의 영. 지식의 영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서 그를 명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눈으로 본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귀로 들은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리라.
성령은 마음뿐만 아니라 두뇌와 상상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성령은 신령한 것을 비교합니다(고린도전서 2:13).
이것은 성령이 성경의 해석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20).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말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21).
따라서 성경 구절을 비교하여 학생에게 올바른 해석을 제공하는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숨겨진 것들을 드러내십니다.
54 성령은 잊혀진 것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너희에게 기억하게 할 것이다.
최고의 컴퓨터는 인덱스 파일링 시스템이 아닙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가 이기적인 일을 처리할 때 성령은 우리를 방해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6~7절에서 성령께서 바울과 실라가 아시아로 가는 것을 금지하고 유럽으로 오게 하신 것을 주목하세요.
때때로 성령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특정 코스를 밟으면 그는 다른 길로 가자고 합니다.
언제 가르치나요?
그분은 우리가 순종할 때 가장 먼저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명상할 때
서비스할 때.
기다릴 때.
우리가 귀 기울일 때.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을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다리기를 거부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에서 빌립은 순종했고, 빌립이 순종한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순종할 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19절에서 베드로가 이런 생각에 대해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그는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기도 중일 겁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서 읽은 것처럼 주님을 섬길 때 우리는 주님을 섬깁니다.
그들이 주님을 섬길 때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실 때.
그는 항상 바쁜 크리스천과 대화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빵 한 덩어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밥을 먹고 있던 사람을 섬기도록 부르신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눈치채셨나요?
기드온은 포도주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피터는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매튜는 세관 게이트에서 소득세 영수증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제자들을 죽이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수평적인 크리스천을 봉사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2장 26절에 시므온이 기다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에서 예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런 다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하세요.
말씀을 묵상하세요.
주님을 섬기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세요.
이제 마지막으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기름 부음은 능력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특별한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33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육신의 모습으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험에 이끌려 나가실 때 성령이 충만하셨습니다(눅 4:1).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절을 읽으며 자신의 기름부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름 부음에 대한 예언은 시편 45편 7-8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은 당신의 동료들 위에 기쁨의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강력한 봉사를 위한 이 기름부음은 악이 불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의가 드러난 후에 주어집니다.
이 기름 부음은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직접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름 부음은 단 하나뿐입니다.
요한일서 2장 20절과 27절, 사도행전 4장 31절에 주목하세요.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의 지시를 받았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은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기름 부음으로 모든 것을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이며 거짓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게 가르친 것처럼, 당신은 그분 안에 거할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여러분과 여러분 안에 오셔서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십니다.
주님께서 미래의 일을 위해 기름 부으시기를 원하신다면 당연히 추가 축복이나 추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위대한 시대에는 매우 자주 있었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그리고 1750년부터 1850년까지 대부흥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일반적으로 구원받은 후 성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안수와 권위를 받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이 구절에 매우 익숙했습니다.
당시 설교자들의 전기에서 이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구원받은 설교자를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 또는 "하나님의 사람" 또는 "천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성경학교에 가서 3년 또는 4년 과정을 이수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원을 받든 받지 못하든 그에게 매달아 놓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졸업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세요.
당신은 지금까지 살았던 최고의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남자 또는 여자가 될 것입니다.
가르칠 수 있는 순수한 영감으로 보존된 무오류의 책을 갖게 되니까요.
그리고 한 마을의 모든 전문 성직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자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성령과 구약의 성도와의 관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에서 성령은 특정한 일을 위해 특정한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입다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에게 임하여 권능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이 베살렐에게 임했을 때 성막이 세워진 것을 주목하세요.
사무엘상 11장 6절에서 사울이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3절에 따르면 그날부터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임했습니다.
사사기 14장 6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사사기 15장 14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6절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야 위에 임하여 그가 아합보다 먼저 이스르엘 입구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따르면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를 베풀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합니다.
모든 신자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침을 받습니다.
모든 신자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을 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왜요? 너희 몸은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 곧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당신은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14절에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그 좋은 것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하심은 구약과 신약의 다른 관계에 기초합니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여 권능을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성령은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임하여 교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과 그리스도인을 다룰 때 우리는 단지 능력만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친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명.
가르치기.
이해.
그리고 그분의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생명력 있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내주하심에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째, 안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의 영으로 증거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저에게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했을 때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느끼지는 못하지만 길을 잃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성령 자체가 우리의 영으로 증거합니다.
둘째,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 후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 즉 구원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분이 믿은 후에 그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구입 한 소유물의 구속까지, 그의 영광을 찬양 할 때까지 우리의 상속 재산의 진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에 오셔서 인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는 진지합니다.
계약금, 구매한 소유물을 상환할 때까지 무언가를 상속받을 것이라는 보증금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십니다.
세 번째는 대담성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할 때, 그들이 함께 모인 곳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담대하게 말을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소심하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포 같은 목소리를 가진 설교자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대포와 같은 믿음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비 같은 목소리는 보통 나비 같은 믿음으로 뒷받침됩니다.
넷째, 자유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자유를 누립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법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법의 처벌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법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있습니다.
법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지옥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사탄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악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판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다섯째, 지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여러분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 성경을 이해할 수 없어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진리 안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주는 통역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가 썼으니 그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힘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권능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들은 변화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고, 하루 만에 3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우리는 신자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하나님을 위해 강력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열매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온유 양선 믿음 온유 절제입니다. 이를 거스르는 법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Joy.
평화.
인내심.
친절함.
세상에.
충실함.
부드러움.
그리고 자제력.
이러한 자질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신자의 삶에 성령이 내주하실 때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혜택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증.
대담함.
자유.
안내.
Power.
그리고 결실.
진정으로 성령은 우리의 도우미입니다.
우리의 컴포터.
가이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힘과 힘을 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은 없어서는 안 될 스승입니다.
신자들의 마음을 깨우치고 성경 해석을 돕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오류가 없고 겸손하며,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이기적인 동기로부터 우리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또한 신자들에게 강력한 봉사를 위해 기름을 부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소명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힘을 주실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성령의 역할에 대한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성령론에 대해 살펴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초점을 맞춘 다음 시리즈 강의로 넘어가겠습니다.
앞으로 6~8강에 걸쳐 성경의 영감과 보존과 같은 주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도 알아보세요.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지침서이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 공부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불리는 성경은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서 궁극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성경에 담긴 신성한 영감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존되어 왔으며 모든 신자들의 삶에서 비할 데 없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관련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원천으로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과학 교과서를 능가하는 방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 이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간절히 기대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이해가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주소서.
다음 시간까지 이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계속 구할 때 주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까지만요.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