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8부
2023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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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삼위일체에 대해 다룹니다.
웹 신학 세미나 시리즈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해야 할 곳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신학 또는 하나님에 대한 연구라고 올바르게 불립니다.
그런 다음 삼위일체 연구에서 기독론 연구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로 넘어갈 것입니다.
이번 주 수업에서는 삼위일체가 연합하여 행동하는 것에 대해 다룹니다.
즉, 성경에서 아버지가 아들과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이 함께 행동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행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세 분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창조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참조는 창세기 1장 3절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과 창세기 1장 2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그러자 빛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땅이 형체도 없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우리는 성육신에서 성령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누가복음 3장 26절 누가복음 2장 11절과 누가복음 1장 35절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고 인간 어머니에 의해 인간의 이름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상환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는 갈보리에서의 사역과 관련하여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론 속죄를 하는 것은 아들 자신이지만 말입니다.
이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삼위일체는 구원의 연합으로 작용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완벽한 그림은 아들을 집으로 영접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자 안에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따라서 탕자가 먼 나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소년이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환영과 인정을 받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2절에 보면 죄인을 용서한 아들을 맞이한 아버지가 옷을 마련해 주고 축하연을 베푼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죄인의 화해에 대한 완벽한 그림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21)
성경은 우리가 사랑하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진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영접한 모든 죄인을 환영하고 받아들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양자로 입양되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는 아들의 형상을 닮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작업 모두. 그리스도의 형상의 확인과 입양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시작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아 들여지고 가족에게 배치되며 그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구원에서도 아들이 활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구하기 위해 양을 찾으러 가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누가복음 19:10)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서 이에 대한 완벽한 그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양 한 마리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목자가 밖에 나가서 양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왔고 자기 자신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1-12)
그래서 아들은 구원에 적극적이며 이것은 더 분명합니다.
새 개종자가 구원받으면 성령께서 인봉해 주십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을 읽었습니다.
그 후 여러분은 믿었고, 그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으로 인침을 받습니다.
또한 에베소서를 읽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퍼하지 말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30)
사용 당일.
그리고 더 나아가 고린도전서 6장을 읽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해 읽으며 거듭난 죄인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거룩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연합하여 일하십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 성령은 모두 구원을 위해 활동하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님은 친교를 통해 활동하십니다.
그들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께 나아가 교제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18절에서.
그분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한 영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들이 우리의 화해라는 근거에 근거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9.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허물을 그들에게 전가하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연합과 친교에 영향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에베소서 2장 18절.
그분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한 영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이야기를 읽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요청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에게 요청했지만 아들 명의로 요청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주실 것이다. (요한복음 16:23)
그리고 우리의 요청을 지시하고 기도할 때 우리를 인도하고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는 로마나 이교도의 교리가 전혀 아닙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왜곡하는 데서 비롯된 두 가지 어리석은 신성 모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작은 신으로 삼아 세 분의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먼저 세웠으며, 이 사람들은 성령을 전혀 강조하지 않거나 강조한다면 거의 강조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신성 모독은 소유권 신성 모독 또는 모달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의 이름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성구는 무수히 많습니다.
물론 초심자나 신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이 모든 것이 매우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이사야 9장과 요한복음 14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거짓말을 증명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런 다음 이사야 9장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원한 아버지가 되실 것임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이제 사람들이 두세 구절을 꺼내 성경을 두세 구절과 일치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잼에 빠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이단들은 이런 방식으로 활동합니다.
결국 성경은 여러분이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왜곡한 두세 구절을 증명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이 문맥에서 두세 구절을 따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절이 나타나는 문맥에서 구절이 구절마다 이어집니다.
이제 예를 들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요한복음 14:9)
그는 육신을 입고 육신으로 나타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 하나님을 영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 본 적이 없다고 암시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18)
그리고 다시 읽었습니다.
아무도 다가갈 수 없고 아무도 보지 못하며 아무도 볼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합니다. (디모데전서 6:16)
그래서 우리는이 구절에 근거하여 세워진이 작고 귀여운 교단의 왜곡이 이것을 가르치므로 성경 전체가이 구절에 규제되어야하거나 가장 나쁜 종류의 음란 한 저속함이며 진지한 하나님의 말씀의 학생 아래에서 규제되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교리적인 가르침도 교단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초교파적인 그룹과 문제가 있습니다.
경전은 주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기록되었으며,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교훈에 유익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
성경이 기록된 첫 번째 목적은 건전한 교리를 위한 것이며, 성경은 마지막 날에 귀가 가려운 교사들이 스스로 쌓여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건전한 교리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창조에서 성육신에서 구속에서 구원에서 친교와 기도에서 함께 일하신다고 말합니다.
몇 구절이라고 하셨나요?
18개 연속으로 출시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출시될 예정입니다.
성경에서 아들 그리스도를 영원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아들이 그렇게 불려야 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도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물론 우리는 이전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가 육신으로 나타난 신 이었기 때문에 오늘 더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용어는 구약성경에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적용된 이름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일원이시며 피조물이나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 생활에서 여호와라고 불린 적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그가 그룹에게"나는"이라고 말하고 자신에게"나는"여호와의 이름을 적용 할 때.
그는 자신이 삼위일체의 일원이며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와 동등합니다.
사실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라는 칭호 또는 용어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호와의 여호와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아버지 여호와 하느님이 아들로 나타나신 것을 다루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신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삼위일체도 그 구분이 흐려지거나 구분의 경계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완벽한 수수께끼이자 미스터리입니다.
따라서 세 명의 창조신 또는 두 명의 창조신을 가르치는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알겠습니다.
삼위일체는 연합과 영광으로 행동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결국 영원한 왕국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가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 께 넘겨 주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권능을 내려놓으실 때입니다. (고린도전서 15:24)
아들은 우리의 사악한 몸을 그분과 같은 몸으로 바꾸어 주실 분입니다.
누가 우리의 사악한 몸을 변화시켜 그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게 하리요. (빌립보서 3:21)
그리고 성령께서 초대를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과 신부가 말하길, 오라. (요한계시록 22:17)
다시 한 번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새 이름을 영광으로 기록하십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20)
아들은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피를 통한 구속, 즉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에베소서 1:7)
그리고 성령께서 거듭남이라는 변화된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요한복음 3:3-6)
3명을 모두 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몇 가지 참조 사항을 적어 두세요.
저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선 그분의 소통할 수 없는 속성, 영원 전능 전지전능 편재성, 편재성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의 전염성, 그의 진리, 그의 자비, 친교 및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모두 같은 속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세 분 모두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자, 준비됐나요?
우선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산이 생겨나기 전, 즉 주님께서 땅과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도 주님은 신이셨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90:2)
아들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것입니다. 전능자. (요한계시록 1:8)
성령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영원한 영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히브리서 9:14)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함 또는 그분의 전능함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마지막 때에 계시될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5)
그 아들.
그리고 그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는 너희에게 족하니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성령.
강력한 표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했습니다. (로마서 15:19)
이제 하나님의 전지전능, 즉 그분의 모든 지식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마음을 살피고 고삐를 시험하여 각 사람에게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를 따라 주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17:10)
그 아들.
나는 고삐와 마음을 살피는 자니, 내가 너희 각자에게 너희의 행위대로 주리라. (요한계시록 2:23)
성령.
사람의 일을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영을 제외하고는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아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11)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편재성, 즉 하나님이 한 번에 모든 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다룰 것입니다.
그의 광대함, 편재성.
아버지 하나님.
누구든지 내가 보지 못할 은밀한 곳에 숨을 수 있겠느냐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내가 하늘과 땅을 채우지 아니하겠느냐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예레미야 23:24)
그 아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성령.
내가 주님의 영혼을 어디로 보내야 합니까? 아니면 내가 주의 면전에서 어디로 도망하리이까? (시편 139:7)
이제 하나님의 거룩함을 속성으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여,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리이까? 주님만이 거룩하시니이다. (요한계시록 15:4)
그 아들.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과 의로운 분을 부인했습니다. (사도행전 3:14)
성령.
그는 주님 보시기에 위대할 것이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15)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진실성 또는 정직성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성전에서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안다.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니 너희는 알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7:28)
그 아들.
거룩한 자, 참된 자,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 여는 자, 닫는 자, 여는 자, 닫는 자, 여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7)
성령.
영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증거하는 것은 영입니다. (요한일서 5:6)
이제 하나님의 선하심, 친절하심, 오래 참으심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희를 회개에 이르게 하는 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선하심과 인내와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로마서 2:4)
그 아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에베소서 5:25)
성령.
당신은 또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당신의 선한 영을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9:20)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친교와 함께할 것입니다.
신은 인간과 교감하고 인간과 소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사귐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요한일서 1:3)
성령.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3:14)
이제 우리는 아들이 신이시며 성령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신이시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세 개의 신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하나이시지만 아버지 하나님에게 부여된 동일한 속성이 아들과 성령에게도 부여되지만 동일한 칭호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은 주님이시며 신이시지만.
그리고 그 아들은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제목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보혜사나 진리의 영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파라클레테 또는 그리스도의 영의 성령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아들은 여호와 지레라는 칭호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 닛시나 여호와 라파가 아니라 자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아들을 성령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보혜사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신격 안에서 절대적으로 분리된 구별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도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묘사 된 동일한 속성이 아버지에게 귀속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버지는 별도의 구별을 유지했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그리스도로 불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예수님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성부 예수와 성자 예수, 성령 예수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한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또 다른 하나님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보트의 반대쪽 끝에서 보트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영광 가운데 주님을 만날 때까지 신비로 남을 신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며, 믿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말씀의 가르침이며, 말씀이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묘사하는 속성인 영원 무소부재 전능 편재 거룩 진리 자비 친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 전능성, 전지성, 편재성, 거룩성, 진리, 자비, 친교와 같은 속성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들과 같이 물에서 올라오시고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며 위에 계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 (마태복음 3:17)
이제 결론입니다.
우리는 개인이 몸과 영혼과 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도 삼위일체 신격의 지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의 몸은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개인의 영혼은 볼 수도, 느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개인 영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성령의 한 유형입니다.
이제 누군가 이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으시죠?
제가 여러분 앞에 서서 저를 본 사람은 베드로를 본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저를 믿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돌아서서 피터를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면 제 자신을 모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문제의 진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고 모순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아무도 저를 본 적이 없고, 평생 단 하루도 저를 본 적이 없으며, 이 지구상에서 저와 사진을 찍거나 함께 식사를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영혼의 의미에서 어떤 사람도 베드로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영혼을 위해 내 안의 육체적 형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본 사람은 베드로를 본 것입니다.
왜요? 제 몸을 보셨으니까요.
아무도 내 영혼을 본 적이 없지만 내 몸을 본 적이 있다면 나를 본 것입니다.
이제 이해하셨나요?
그것이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삼위일체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도 삼위일체 형상이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은 빌이고 내 영혼은 빌이고 내 정신은 빌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미리 아신 자 곧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 (로마서 8:29)
하나님의 몸이 현현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고린도후서 4:4)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모습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첫 번째 칭호 주님은 주님이시기도 한 아버지 하나님과 일치합니다.
그의 두 번째 직함은 인간 예수 자신만의 독특한 직함입니다.
그리고 그의 세 번째 칭호는 크리스토스 또는 메시아를 위한 성령의 사역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뵙습니다.
주님이라는 이름은 그가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의 두 번째 이름 예수는 그가 인간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칭호는 그가 성령에 의해 이스라엘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로 태어났음을 나타냅니다.
결코 같을 수는 없지만 동등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성경 교리는 동등하지만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의 기본 교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기본적인 성경 교리입니다.
죽으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게 됩니다.
제임스가 말합니다.
영이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26)
바울이 말했듯이 죽으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게 됩니다.
내가 떠날 때가 가까웠다. (디모데후서 4:6)
창세기 35장에서 라헬이 죽으면서 그녀의 영혼이 떠난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하다고 가르치고 다양한 불일치를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 적으로 혼합하고 통합하는 것은 우주와 진리에 대한 비성경적 인 생명 철학 접근 방식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의 접근 방식은 분리된 구분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성경적 접근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므로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28)
둘은 동등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명백히 분리된 별개의 물리적 창조물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신격을 가르칩니다.
당신의 영혼으로 대표되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몸으로 대표되는 아들.
그리고 성령은 여러분의 영으로 대표됩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십니다.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재생되고 태어나고 생산됩니다.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 구약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육신으로 나타나셨으며 성령으로 성육신하신 신격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육신으로 거하십니다. (골로새서 2:9)
기독교인들이 믿어야 할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여러분도 믿어야 할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축복을 받으십니다.
그러니 이 위대한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입니다.
이 위대한 것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입니다.
세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주를 지탱하는 영원한 정신입니다.
영광의 영원한 영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지탱하고 유지하며 모든 곳에서 선과 악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든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누가 문자 그대로 육신을 입고 눈에 보이는 인간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으며, 우리가 고통받는 것처럼 유혹을 받고 우리가 죽는 것처럼 피를 흘리며 죽는 것처럼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땅의 구멍에 묻히사 모든 일에 형제들과 같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그가 시험을 받고 고난을 받고 사람으로서 죽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에 직면하여 죄인을 대신하여 불쌍하고 비참한 죄인들을 구원 할 수있었습니다.
또한 더럽고 타락한 어두워진 몸, 즉 성령의 성전이라는 그릇에 하나님의 바람의 숨결이 들어가서 그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쓸어내어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새 생명과 새 탄생을 주어 그리스도의 몸 안에 두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원한 목적지가 되게 하십니다.
모든 진리 안에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한 하나님의 말씀에 영감을 주신 분입니다.
그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보존해 주셨고, 하나님 자신이 숨을 쉬고 보존하신 경전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고 이끌어 주시고 장래 일을 보여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영화 롭게하고 성령이 아닌 자신을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할 것입니다.
그 분을 경배합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각자 감사합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그들이 구원받은 우리를 위해 개인적으로 행한 일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일, 이 세상이 무너지고 공포의 소굴이 되는 것을 막는 일, 그리스도의 몸이 드러나고 큰 환난이 시작된 후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 같은 시간까지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말씀 안에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그리고 인간을 믿음으로 살게 하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다음 주 같은 시간까지.
주님의 축복과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