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10부
2023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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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과 교사 여러분,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세션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웹 신학 세미나에서 다시 한 번 함께 공부합니다.
이번 수업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다룹니다.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에 관한 위대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전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기독론에 관한 교훈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 첫 12부에서는 신학의 본질적인 주제인 아버지 하나님을 다루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독론에 관한 34과, 아들에 관한 교훈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주 공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룹니다.
인생의 큰 문제 중 하나이자 하나님의 말씀의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결국, 기본적인 문제는 왜 의인들이 고난을 당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는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아버지라면 왜 침묵합니까?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십니까?
신이 할 수 있다면 왜 그것을 막지 않으십니까?
고전적인 질문은 하나님이 죄가 세상에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면 왜 막지 않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이러한 유형의 추론에 익숙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며,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 및 회의론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신은 왜 침묵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시는가.
물론 성경에서 이 문제는 가장 오래된 책이자 실제 책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책인 위대한 욥기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골프 그린을 산으로 분류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능가하는 책이 바로 욥기입니다.
그리고 욥기는 이 고전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의인은 왜 고난을 당하는가.
왜 하나님은 재앙적인 폭발 사고 태풍 홍수 전쟁을 막지 않으시는가.
욥기에 나오는 위대한 고난당사자는 이렇게 진실하게 말했습니다.
오, 내가 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알았더라면! 내가 그의 자리까지 갈 수 있다면! 나는 그분 앞에서 나의 대의를 명령하고 내 입을 논쟁으로 채울 것입니다. (욥기 23:3-4)
그렇다면 문제는 왜 의인이 고통을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은 왜 침묵하시나요?
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왜 하지 않으실까요?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고전적인 문제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구원받지 못한 과학자는 그에게 30년 된 석고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과학자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시신이 땅속에서 썩으면 거름이 되어 어떤 동물이 당신을 잡아먹는다는 것뿐입니다.
태양계는 몇 천 5백억 년이 지나면 닳고 식어 폭발하고 수축하여 다른 무언가로 변할 것입니다.
훌륭한 위로의 말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하는 전형적인 말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한 사람이 죽습니다.
과학은 이를 바꾸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과학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줬다고 말하죠.
당신이 말하는 약을 살 돈이 있다면 말이죠.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린 채로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 않으세요.
그리고 그 중 약 20%는 밤에 굶어 죽습니다.
그들은 사치품을 살 수 있는 부유층을 위해 몇 가지를 발명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다려야 합니다.
네, 돈만 있다면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네, 그들은 놀라운 약을 발명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살 돈이 있다면요.
문제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왜 침묵할까요?
왜 전쟁에서 팔과 다리가 잘린 채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평생을 끔찍한 상태로 살아야 했죠.
아시다시피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왜 기형아를 태어나게 하셨나요?
신이 저 위에 계신다면 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3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고 13년 동안 고문을 당한 사람이 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이 힘들 것입니다.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절망적인 사람 욥의 인내심.
그는 7일 밤낮을 땅바닥에 앉아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떠났을 때 그는 살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신에게 비난했습니다.
이게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욥을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이것이 남자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남자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 가난과 죽음, 질병과 굶주림은 어쩌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인간과 인간성을 없애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자고 말하죠.
여기에 있는 것은 교육과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고, 신에게 상의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신을 쫓아내고 나면 악마는 바로 계속됩니다.
한 남자가 말하길, 왜?
대답,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은 어쩌라고요?
그게 문제입니다.
욥기는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의인은 왜 고통을 받는가.
이것이 바로 욥기에서 다루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왜 하나님은 재앙적인 폭발 해일 사고 태풍 홍수 지진 전쟁을 막지 않으시는 걸까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는 욥의 말처럼 신의 침묵을 근거로 주장합니다.
오, 내가 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알았더라면! 내가 그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을 텐데! (욥기 23:3)
욥은 신에게 형벌에 대한 답을 구하려 했지만 답을 얻지 못한 사람의 완벽한 예입니다.
그리고 모든 명백한 목적이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자식들을 모두 잃고 재산도 모두 잃고 건강도 잃은 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러다 아내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친구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거나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경우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질문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기 전에 진리의 말씀에서 인용한 몇 가지 명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성경 구절은 아니지만 매우 성경적인 내용입니다.
"전쟁은 현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지옥은 이 세상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따라서 신이나 지옥을 믿지 않는다면 답이 없습니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서 죄를 벌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나 다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고통의 문제를 죄의 문제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남성들은 이 오래된 문제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해답을 고안해냈습니다.
이신론자는 신은 선한 신이지만 삶의 세부 사항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은 이 세상 일의 구경꾼일 뿐이며, 우주의 뒤편에 있는 일종의 에너지 장으로서 일을 시작하고 나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유신론적 진화론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무신론자는 침묵이 신이 신화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하며, 살아 있는 신이나 진짜 신이라면 말을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무시합니다.
실제로 그는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24명의 사람이 기록한 1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유물론자들은 세상은 인격적인 신 없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맹목적인 우연의 자비에 달려 있다고 가르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상대적이고 운동도 상대적이고 거리도 상대적이기 때문에 진리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주 전체가 다윈의 법칙, 맹목적인 우연과 우연한 진화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죠.
우연이 지배하는 우주를 믿으려면 구름의 땅 어딘가에 있어야 합니다.
시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우연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누가 그 말을 믿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계를 차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신은 왜 침묵할까요?
이제 몇 가지 부정적인 답변이 있습니다.
우선 무관심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 그는 울부짖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너무나 아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너무나 아끼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께 쏟아 부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주님이 기뻐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써 하나님의 정하신 예지에 의해 구출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관찰력이 없는 사람들은 신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침묵한다고 말합니다.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사방에 있어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살피신다. (잠언 15:3)
신이 있다면 그는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누군가는 그가 사랑스럽지 않아서 침묵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좋은 부모는 가끔씩 벌을 줄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8절 말씀처럼.
너는 어린이들에게 말하는 권면을 잊어 버렸다.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고, 주님의 꾸지람을 들었을 때 낙심하지 말아라.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는 모든 아들을 채찍질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한 남자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을 믿습니다. 나는 신이 침묵할 때에도 신을 믿으며, 혼자 있을 때에도 사랑을 믿습니다.
신이 원치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을 보시고 우리의 삶을 계획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기꺼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주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9)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와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느냐? (에스겔 18:23)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한다. (에스겔 33:11)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성경이 아닙니다.
신이 사람들이 불의 호수에서 불타는 것을 보면서 심한 만족감과 가학적인 쾌감을 느낀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성경이 아니라 지옥에 갈 사람이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게 하려는 어떤 사람이 성경을 왜곡해서 만든 변태적인 내용입니다.
지옥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성경에 따르면 지옥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 가면 외계인이 될 것입니다.
실향민이 되어 잘못된 환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불못에 던져 넣을 의도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이디어입니다.
당신의 의를 하나님의 의에 대입하는 것은 당신의 생각입니다.
전능하신 분과 경쟁하면서 그분이 없는 척하거나 그분만큼 잘하는 척하는 것이 당신의 생각입니다.
전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 자신의 의가 아닌 그의 의를 믿지 않았습니까?
20년, 30년, 100년 안에 죄값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그들이 기꺼이 회개하고 바로잡기를 원하십니다.
상대방이 올바르게 행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대처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침묵과 관련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해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문제에 접근할 때 무신론자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개방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모든 무신론자들은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회의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성경에 관한 질문으로 좁혀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편협하고 편협한 편협한 무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대학 교육에서 열린 마음과 의문을 품고 최종적인 해결책에 도달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두고 변화할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한다고 자랑하던 박사님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죄는 고집을 부리고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과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성경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기 시작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박사 및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성경 구절 다섯 구절을 인용했더니 그들은 다른 구절이 인용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성경책을 덮으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정말 열린 마음인가요?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포클레스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스타인벡 니체 투르게네프 드레이크 쇼펜하우어 칼라일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다면 성경도 한 번에 읽을 수 없나요?
안 되나요?
왜 안 되나요?
시간을 내어 마하바트라, 바가바드 기타, 프라나스, 샤스타, 트리피타카, 공자, 조로아스터교 문헌, 코란 등의 경전을 읽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요한복음에 5시간을 투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안 되나요?
자, 이제 신의 침묵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입니다.
첫째, 상식입니다.
많은 어려움은 전적으로 우리의 부주의와 태만, 어리석음으로 인한 고의적인 죄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이를 사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언젠가 어느 설교자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농작물을 심고 나서 흉작을 걱정하며 평생을 기도합니다.
신이 당신이 뿌린 작물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뿌린 만큼 거둘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두 번째.
성경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나는 유한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한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너희 길은 내 길이 아니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에는 슬픔과 고통, 시련과 시험, 아픔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 면제를 받아야 하나요?
면제되는 사람이 있나요?
뇌성마비가 아니라면 백혈병에 걸린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백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휠체어를 타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요?
잘 걷고 계신 분들 중 궤양이 있는 분은 없으신가요?
궤양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부비동 질환과 두통이 있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두통이나 코에 문제가 없는데도 납부할 수 없는 청구서가 쌓여 있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요?
공과금을 납부했다면 이혼을 통해 파탄 난 가정에서 벗어나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요?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는 분들 중 장애가 있거나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분들도 있지 않나요?
모두 건강하다면 다리와 팔이 부러진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부러지지 않고 모두 건강하다면 누군가는 체포되지 않았을까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듯이 말하지 마세요. 저도 오래 살았고 끔찍한 일을 많이 봤으니까요.
저는 교육받은 고급 문화 종교인들이 비밀의 열쇠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슬픔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슬픔을 아는 사람, 슬픔을 아는 사람. (이사야 53:3)
슬픔의 사람이여, 우리의 수치를 짊어지고 죄인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할렐루야.
구세주 같은 존재죠.
내가 왜 문제에서 면제되어야 하나요?
아무도 없나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유명한 철학자를 찾아와 자신이 겪고 있는 끔찍한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했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겠다고요. 그가 말했죠 여기 나와서 이 블록을 내려가서 이 블록을 한 바퀴 돌고, 이 블록을 마치면 시내로 가라고요.
그리고 그는 말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을 찾으면 돌아와서 문제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요.
그리고 다섯 블록 정도 지나고 나서 그녀가 돌아와서 말했죠.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을 찾았냐고 물었죠?
제가 들어가는 집마다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관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는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포함됩니다.
인간의 자유는 더 많은 책임을 의미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곧 도덕적 책임을 의미합니다.
자유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기꺼이 지지 않겠다면, 자유를 누릴 준비를 하세요.
책임을 다하든 안 하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다른 것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출애굽기 20:5)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분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의 관심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0)
그도 신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지 않을까요?
첫 번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태복음 22:37-38)
주님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고, 주님보다 로큰롤을 더 좋아한다면요. 그리고 야구와 축구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아내와 자녀를 주님보다 더 사랑한다면요.
주님보다 집과 가족, 자동차를 더 사랑하고, 주님보다 사업과 사역, 주일학교 출석을 더 사랑합니다.
신은 질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람의 날에 살고 있습니다. 죄의 시대, 은혜의 시대.
그리고 이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판단의 날이고 간섭은 나중에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은 나중에 들리는 비난으로 깨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계산하실 것입니다.
아직 장부가 다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일시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 신이 이 일에 대해 뭔가를 하지 않으시냐고 하셨죠? 그럴 겁니다.
왜 신은 그것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냐고요? 그럴 겁니다.
언제요? 알고 싶으신 것보다 더 빨리 알게 되실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일을 서두르자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화 있을진저. (이사야 5:18-19)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일에 대한 형벌이 신속히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들의 마음은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전도서 8:11)
내가 말했듯이. 한 농부가 한 설교자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가 말했죠. 저는 일요일에 심고 일요일에 수확하고 일요일에 쟁기질을 하는데 10월이 되어서야 이 주에서 가장 큰 은행 계좌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목사님이 답장을 보내서 하나님은 10월에 결산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백보좌의 심판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불필요하고 목적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되면 거기서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7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너희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조급함, 그리고 얼마나 조급한가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시련은 썩어 없어질 금보다 훨씬 더 귀합니다. 비록 불로 시험을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은 영광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오늘 너머를 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축복이 떠나는 이유.
우리는 한숨도 쉬지 않고, 초조해하지도 않습니다.
각각의 슬픔은 곧 잊혀질 것입니다.
아직 많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영혼에게 말한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면.
하지만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베일을 던져주십니다.
우리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에게 집착합니다.
이 생이 끝날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신뢰하고 순종하세요.
오래된 노래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한 위대한 설교자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천국은 이해의 장소입니다. 땅은 신뢰를 위한 곳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한 말 중 가장 위대한 말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장님으로 태어난 어떤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그 안에서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9:3)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고통받았으니 당신도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받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슬픔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받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천국을 더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위의 것들에 애정을 쏟을 수도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면 온갖 시험과 시련과 고난을 겪을 수 있듯이, 선한 사람이라면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진심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참되고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분에게 충분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 여러분이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것으로 하나님의 침묵에 관한 오늘의 교훈을 마칩니다.
다음 주 웹 신학 세미나에서 같은 시간에 공개될 다음 강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한 성경 교리를 다룰 예정입니다.
다음 주에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