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19부.
2024년 02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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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좋은 아침입니다.
이 세미나는 웹의 신학 세미나입니다.
이제 19번째 세션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성구들은 주로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론입니다. 경전에는 부정적인 의미를 제외하고는 적그리스도의 일세계 정부 아래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것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경전이 기록된 목적은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성경이 교리뿐만 아니라 의로 교육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우리의 헌신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습니다(딤후 3:16). 그리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으며 무엇보다도 교훈에 유익합니다.
둔한 사람이 교리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그의 경건한 삶과 영적인 삶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건전한 교리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뜻대로 가르치기 위해 진리를 적절한 순서로 배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션에서 우리는 성경 본문의 단어 하나도 바꾸거나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 주어진 책에 따라갑니다.
사실, 과학적으로 세뇌되거나 신학적으로 호그와시되지 않고 명백하게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필라델피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고 아무도 본 적도 없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원본 사본과 구두로 영감을 받은 총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많은 쓰레기를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는 사도적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1500년에서 1900년 사이의 열린 문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 개신교 종교개혁의 교회가 바로 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절대 진리를 다루고 있으며 절대적으로 계시된 진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이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하나님의 전달 가능한 속성과 전달 불가능한 속성에 대한 수업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여섯 번째 세션에서 신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피조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우주에서 온 가짜 신들과 신들의 금 수레에 대항하여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인 계시입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황혼의 우주 학자들과 토성에서 온 사람들과 여우 원숭이들과 바다 밑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타락한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와 접촉하려고 시도하고 매년 250 억 달러의 세금을 날려 버립니다.
생명체는 이미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다루는 교리인 기독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구세주로서, 그리고 아직 죄가 없는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지난 두 번의 수업에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우리는 재현할 수 없는 수학적 현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예언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다른 어떤 수학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예언된 500개의 예언이 수학적 현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그 중 48개가 예수님이 처음 이 땅에 나타나셨을 때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태어나기 400년에서 천년 전에 예언된 48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통계적 확률은 10의 157의 제곱에 해당하는 확률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주에는 전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학을 근거로 성경을 거부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전설과 신화라는 이유로 성경을 권위 있는 절대 진리의 책으로 거부하는 것은 우리가 그 반대의 증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수학 자체의 통계적 증명에 따르면 성경은 수학자들도 재현할 수 없는 수학 분야의 경이로운 업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논리 경험주의자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추종자들 중 절반 정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학 수준 이상의 교육을 20년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며 시간을 낭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 생각은 버리세요, 형제여.
여기 그가 재현할 수 없는 현상을 보여주는 책이 있고, 그를 가르친 사람도 재현할 수 없는 현상을 보여주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외에는 세상의 어떤 경전에서도 재현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경전, 베다, 샤스타, 푸라나, 바가바드 기타, 트리피타카, 무함마드와 공자의 저술은 근사치조차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한 가지를 말하고 학자와 과학자들이 다른 것을 말한다면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쓴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기다리거나 따라잡으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 세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21가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함마드나 부처나 마오쩌둥이나 레오쩌둥처럼 종교적 스승으로 분류하기 위해 이교도 회의론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한 21가지 논거가 있는데, 이는 그의 생애에서 여러 가지를 가르쳤지만 어떤 식으로든 아무 의미가 없는 다른 스승으로 분류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말은 그 어떤 스승도 감히 역사에 대한 역사적 추측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 중 500개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금세기에는 20개, 30개가 성취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예언을 하셨습니다.
결국 일어나서 종교와 신과 영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접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 위에 신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케이시와 마들렌 머레이 오헤어, 진 딕슨, 마더 쉽튼,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사이비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정치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내려고 신문에서 이런 작은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500개의 상세한 예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며, 그것은 일어날 것입니다.
현대 과학자들과 여러 광대들이 제시하는 첫 번째 주장은 그리스도는 살과 뼈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며, 영이신 하나님은 살도 뼈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세요.
영은 여러분들이 보는 것처럼 살과 뼈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살과 뼈를 모두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그는 영이셨고 성령은 성육신하셨습니다.
이 반대는 구세주의 이중성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보이시려면 그분이 살과 뼈가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중 인격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단 한 분의 중보자, 즉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현현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근거로 그가 신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하려면 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려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옛 신조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이 두 가지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다고 믿습니다.
"아주 신은 아주 신이고 아주 사람은 아주 사람이다."
두 번째 반대는 그리스도는 시작이 있었고 하나님은 시작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2절과 요한복음 8장 42절에 주목하세요.
산들이 생겨나기 전이나 주님께서 땅과 세상을 지으시기 전부터,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90: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도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42)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기 위해 시작이 있어야 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 골로새서 1장 17절, 이사야 9장 6절에 근거합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독생자는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그를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구성됩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셨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다시 한 번 우리는 이중적인 성격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격의 지체로서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하나이면서 아버지와 동등하신 영원한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비워야 했습니다(빌립보서 2장).
그 자체가 겸손입니다.
신의 형상을 한 사람.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그는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6-8)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람이 시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시편 2:7)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시작이 없으셨지만 아버지와 영원히 공존하셨습니다.
세 번째.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신이 될 수 없고, 신은 시작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러셀 목사와 러더포드 판사(여호와의 증인)의 추종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요한계시록 3:14을 사용합니다.
물론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속격은 종종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은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해석됩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합니다. 신실하고 참된 증인 아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모든 피조물의 맏아들이신 분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목적어가 아닌 속격의 주어입니다.
배우지 못하고 불안정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멸망을 위해 경전을 쉬게 합니다.
당신이 말합니다.
"형님, 그럼 제가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법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1장만 읽으면 요한계시록 3장 14절을 맞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그리스도는 성경을 거부하며 성경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하여 그를 성육신한 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창조의 시작으로 삼아 하나님을 창조 행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그 문장에서 하나님은 목적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John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15)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신이 목적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주어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계시하신 진리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객체가 되어 계시하신 하나님에 관한 진리일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하나님이 주체가 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간단한 반전으로 인해 지옥은 없다고 생각하고 지옥을 없애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갇혔습니다.
전 세계로 잡지를 발송하는 전국적인 그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인 이유는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지옥이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신으로 만들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요즘에는 불경스러운 말도 안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될 수 없었던 네 번째 이유는 호세아 11:9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3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에스겔 28장 2절은 사람이 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인간의 몸과 육체를 취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신이 아니지만(에스겔 28:2), 하나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예레미야 32:17).
그는 원한다면 육신으로 나타날 수 있었고, 원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집의 몸이 나를 준비시켰다는 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몸을 가지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 (마태복음 3:17)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다섯 번째 반대입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과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인격체이지만, 히브리서 1장 8절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사람들이 삼위일체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지 보셨고, 이전 세션에서 왜 우리가 신학을 제대로 논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와 신격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 주제를 다룬 모든 구절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전 세션을 읽거나 듣지 못한 분들도 많으시니 꼭 확인해보세요.
이 모든 정보는 웹사이트에 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경 신자이자 잃어버린 장로, 잃어버린 스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받고 그것에 대한 모든 경전을받은 후에.
그들은 여전히 술에 취해 멍한 상태로 아무것도 듣지 못하거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공과에서 삼위일체가 "창조 안에서" "성육신 안에서" "구속 안에서" "구원 안에서" "친교와 기도 안에서" "영광과 중생 안에서" 연합하여 행동하셨음을 증명하는 구절들을 알려드렸습니다.
삼위일체와 아들과 동의어이기도 한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을 나열했습니다.
그분의 영원 전능 전지 편재 거룩 진리 자비와 친교.
이 세션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두 가지 탄탄한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1장 8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직접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보좌는 영원토록 영원합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현대 성경에서 히브리서 1장 8절이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근본주의자들이 추천하는 성경도 포함됩니다.
오늘날 기독교 대학과 기독교 대학은 완전히 배교하고 있으며 다른 구절에서 표현 된 신을 찾을 수 있다는 절름발이 알리바이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하는 성경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학교와 기독교 대학 및 성경 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성경 기관과 대학에서 두 가지 버전의 성경을 권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버전이 모순되는 경우 학교 또는 대학이 최종 결정권자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두 성경 사이의 중재자 또는 중재자.
이를 위해 오늘날의 기독교 대학, 즉 모든 대학을 의미합니다.
공언 여부와 관계없이 주요한 것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지하는 구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하는 구절이 있는 잘못된 성경 번역을 권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위선적 기관들이 제공하는 절름발이 알리바이가 있다면, 성경 어딘가에서 신앙 교리의 기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 우리의 최고 교리만큼이나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성경에서나 신앙의 기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복음 전도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
어떤 구절에서 신앙의 근본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복음 전도지가 성경이라는 의미는 아니며, 어떤 구절과 버전이 성경이라고 해서 그것이 성경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장 8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하는 성경 구절도 동일합니다.
그들은 카멜레온이자 박쥐입니다. 새와 함께 날고 쥐와 함께 달립니다.
여섯 번째 이의 제기.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요한복음 8장 4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도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나아갔고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을 지상에 보낸다고 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지위가 낮아지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예수님은 자원하여 오셨습니다(히브리서 10장).
두 번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음이라.
갈라디아서 4장 4절과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따르면, 그렇다고 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지위가 약화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로 만드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직접 신의 속성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전 강의에서 그리스도의 창조 능력(요 1:1-3), 원소를 다스리는 능력(눅 8:24, 막 4:39)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바람과 물의 격동을 꾸짖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멈추고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바람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바다에게 말씀하셨다. 평화, 가만히 있으라.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큰 평온이 찾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으로서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를 받으셨고(요 9:38), 마귀에게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예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4:8).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를 경배했습니다. (요한복음 9:38)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말씀하신 후 사람들이 자신에게 절하고 경배하게 하시고 그들의 경배를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 섬겨야 한다. (누가복음 4:8)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보내졌을지라도 이 땅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현현하셨습니다.
일곱 번째 이의 제기.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요일 4:2-3).
예수님의 육신에는 뼈와 피가 있기 때문에 그는 단지 사람일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효과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성육신의 목적을 위해 살과 뼈와 피를 취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영이시므로 히브리서 2장에 따르면 우리의 구속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우리 인성에 참여해야만 하셨습니다.
아니면 우리를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신이라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신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여덟 번째 이의제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머리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에서는 한 사람이 의장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두 사람보다 위대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등합니다.
그러나 행정적인 목적에서는 아버지가 총괄 관리자 역할을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수업에서 삼위일체의 방식에 대해 논의할 때 이에 대해 상당히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아홉 번째 이의제기입니다.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8장 40절과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 사람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본성이 섞이지 않고 한 인격 안에서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셨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이를 나타냅니다.
엠마누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엠마누엘.
즉, 그는 고통 받고 피 흘리고 죽고 사람이 겪는 일을 겪기 위해 모든 사람이되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죄를 완벽하게 속죄하기 위해 모든 신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들어본 그 어떤 슈퍼맨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슈퍼맨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열 번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회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요한복음 3:16)로서 독특하고 특별한 위치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하시지만(빌립보서 2:6) 성도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으로서만 상속인이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쉽게 말해 천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업 국가, 즉 이스라엘 민족이 있을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4장).
신약성경에는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1:1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불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신 공식적이고 고유한 지위가 폐지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가끔은 "only"라는 단어를 빼기도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삭제는 "begotten"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육체적으로 성령으로 태어난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거듭나면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났을 때 육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살은 여전히 땅속의 구멍으로 들어가 썩어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에서 태어난 것은 육신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갖는 독특한 위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성령에 의해 잉태된 그 어떤 사람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거듭났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안에 여러분을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거듭난 여러분의 정신이었습니다.
영으로 태어난 것은 영입니다.
당신과 나의 삶에서 당신의 육신이 성령에 의해 잉태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는 매우 독특한 작업입니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아들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자리입니다.
그동안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당신은 땅바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썩고 부패하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이 무덤에 누워 있을 때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놀라운 일이지만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내 영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거룩하신 분이 부패하는 것을 보게 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27)
그의 영혼은 지옥에 남겨지지 않았고 그의 육신도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31)
그는 육신이 성령으로 태어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독특하고 특별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분류하고, 모든 사람은 그들 안에 신성의 불꽃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는 그분이 단지 우리의 아들 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아들 됨을 깨닫도록 도와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의 야만적 인 상상력이 발명 한 가장 음란 한 신성 모독적인 말도 안되는 말의 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다음 세션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제기된 21가지 반론을 계속 살펴보고, 성경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