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21부.
2024년 02월 18일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과 교사 여러분,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이번 주 수업은 여전히 기독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몇 주 동안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연구하는 기독론이라는 주제를 다룰 것입니다.
이번 주 21과에서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룰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물론, 가장 먼저 내려야 할 것은이 사람의 본질적인 본질입니다.
이러한 주제는 오랫동안 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실제로 거듭나지 않고 기독교를 고백하거나 그리스도를 고백 한 이교도들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는 그것들은 그에게는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둘러싸고 벌어진 많은 논쟁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자체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성경의 특정 내용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신성의 몸에 삽입했습니다.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바로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 레슨은 삼위일체에 대한 전체 레슨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이 레슨만으로는 주어진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탄탄한 세션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쟁에 대한 두 개의 세션이 이어졌습니다.
이전 강의를 확인하지 않고 갑자기 이 강의를 확인해서 메시지를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단 종파나 종파를 확인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가르침에 대한 성경 구절을 듣자마자 1800년 전에 날아온 지푸라기를 붙잡고 그 독특함으로 인해 자신이 신앙의 영역에서 뭔가 새롭고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속고 속이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는 18세기나 지난 것이며 조금도 사실이 아닙니다.
이러한 종파와 컬트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신성을 부인하면서도 그것을 믿는다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신격의 세 위격을 부인합니다.
이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부인하는 많은 컬트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최근 강의에서 150개 이상의 성경 구절을 제시하여 증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나타나신 한 분이십니다.
성서 신학을 공부한다면 성서 신학과 성서 기독론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항상 같은 장소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자신만의 특별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4~5개의 구절을 나열하는 특정 칼라맨을 따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원에서는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려드리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가르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성경 자체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경은 누구나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몇 단어를 추가하고 저기에 몇 단어를 빼고 문맥에서 구절을 가져와서 어떤 미친 이론과도 일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수업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논의 중인 주제는 기독론,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본질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번 주 공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지, 우리가 말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섯 구절을 조합한 누군가의 가르침에 따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신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버지께 복종하는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인용합니다.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할 때 인용한 성경 구절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경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경을 인용하면 자동적으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결국.
구절이 쓰여진 방식대로 인용되지 않았거나 문맥에서 벗어난 경우 어떤 의미인가요?
0이라는 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 말은.
여러분 앞에 서서 춤출 때가 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죽여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벧엘(하나님의 집)에 와서 범죄하라. (아모스 4:4)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만한 자를 행복하다고 부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세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은 심지어 구원을 받습니다. (말라기 3:15)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강도의 장막은 번영하고 하나님을 도발하는 자들은 안전합니다. (욥 12:6)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너는 반드시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4)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고 제가 방금 말한 마지막 몇 줄의 내용에는 진실이 하나도 없습니다.
방금 경전에 기록된 지독한 거짓말을 잔뜩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이 세션에서는 성구를 나열하고 적어 보도록 요청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그리고 성경 구절을 인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어떤 미친 사람이 집으로 보낸 전도지나 자료가 있다면, 저희를 확인해 보세요.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자, 첫 번째.
성경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하다고 말합니다.
참고 요한일서 2장 23절 요 5:18 레위기 24:12 요 10:30 요 14:9 골로새서 1:15 요 10:33 요 17:5 요일 1:1 요일 5:20 딛 2:13.
나머지는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교육 세션에서 이 성구들을 아주 천천히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적어두지 않았다면 시간을 내어 적어두거나 경전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션에서 주목할 점은 맥락과 관계없이 단순히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 구절 5개를 인용하여 중생에 대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38 사도행전 22:17 마가복음 16:16 로마서 6:3 및 베드로전서 3:21.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전혀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유대인 잔치에서 유대인과 대화하는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는 8장이 지나서야 성경에 등장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는 구원의 비유를 제외하고는 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2장은 신약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유대인 개종자가 세례를 받는 장면을 말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6장 3절에는 그 장이나 그 앞의 6장, 그 뒤의 6장 어디에도 물세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문맥에서 벗어난 구절을 인용하여 비성경적인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 실제로 문맥을 확인해보면 전혀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나요?
좋아요, 요한복음 5장 18절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더욱더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신명기 6장 4절의 말씀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리스도께서 고백하신 말씀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직업을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고백한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독특하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어떤 유대인도 주장하지 않았던 것을 주장했습니다.
매주 이 세션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세션은 매주 진행됩니다.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불렸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렸지만 개인으로서의 이스라엘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첫 아들 아담(누가복음 3장 마지막 구절 참조)부터 그리스도 시대까지 어떤 사람이 거듭난 사례는 없습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는 손전등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두 번째 아담이 나타날 때까지 하나님의 왕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주장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들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여호와를 숭배하는 것처럼 자신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주장한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명기 6:4을 믿었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신이 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6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한 분이신 여호와이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장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하고 신성 모독자에 대한 율법상의 형벌인 돌로 쳐 죽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레위기 24:12).
이렇게 말하죠. "유대인이 틀렸어, 그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어."
물론 그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가 청구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하셨죠?
지난 35절에서 예배를 받으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리스도께서 예배를 받으셨다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경배하게 하고 경배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요한복음 10:30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4:9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분과 아버지는 신격 안에서 하나이시며 나눌 수 없는 분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 카리스마 넘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만 믿는 이단이라는 이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 아들의 이름은 예수,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 악마가 당신을 얼리지 못하면 불태워 버릴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오른쪽으로 밀거나 왼쪽으로 밀 것입니다.
그는 중앙으로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진실은 예수는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영이신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보혜사 또는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지만 결코 예수님으로 불리지는 않는 성령이십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두 번의 세션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해당 세션을 놓치셨다면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강의에서 이러한 문제를 철저히 다뤘습니다.
러셀이나 로스버그 같은 사람들만 그 의미를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합니다.
다시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영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이시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반영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1장에서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5절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분(그리스도)
요한복음 10:33,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에는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성 모독죄로. 그리고 당신은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신이 되십시오.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평생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완고하게 믿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어리석게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제 어리석다는 말은 종교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셨을 겁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에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저희는 여러분의 목구멍에 종교를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끄면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진실을 들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일에 간섭하고 있어요, 우리 일에 간섭하고 있죠."
아니요, 우리 종교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나는 남의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알았어요, 그럼 제 일에 간섭하지 마시고 신념에 따라 내버려 두세요.
성경의 신념에 따르면,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한 남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물어보는 건 정말 고맙지 않아요.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건 제 일이니까요.
하지만 내 일이 아니라서 천국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그건 여러분의 일입니다.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증인을 거부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베는 목은 당신의 목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으면 직접 해보세요.
저는 평생 다른 사람의 목구멍에 제 종교를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어요.
저는 그들에게 진실을 받아들이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진리를 부정하는 그들의 종교 체계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락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자유 의지의 아름다움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지옥에 가고 싶으면 지옥에 갈 자유가 있으며, 독선적인 사람들은 지옥에 가고 싶어 합니다.
독선적인 사람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 아세요?
이 땅에서 인간의 의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의를 높인 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독선적인 바리새인의 등에 채찍을 들이댄 책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장 5-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 마음을 품으라.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직하게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셨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당신과 함께했던 영광으로 당신 자신으로 나를 영광스럽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 성육신하기 전의 영광을 언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미혹된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하고 글을 썼습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신이시니라".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경 판으로 한 일입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평생 동안 정죄하신 신성 모독적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첫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시기 전에 신격 안에서 하나님과 동일하셨다는 강력한 긍정적 진술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대신 누가복음이 작전 73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1965년 로마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당시 요한복음의 구절을 나눠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학교를 다니며 돈을 쥐구멍에 날려버린 자유주의 교수들이 있었습니다. 공관복음서(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요한복음은 그 자체로 특별한 괄호 안에 넣어서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성육신하신 말씀이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라 불렸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참되신 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우리는 참되신 그분 안에,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십니다.
누구? 예수 그리스도.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이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건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더 많은 힘을 얻으세요.
원하는 종교를 선택하세요.
하지만 성경이 두 성경에서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세요.
이사야 9장 6절에는 아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일컬으리라.
당신은 말합니다. "믿기지 않아요."
여러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믿지 않아도 됩니다.
기독교인들을 우상 숭배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천만에요.
저희는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왜 제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를 우상 숭배자라고 부르고 싶어도 전 괜찮습니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나의 우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이미지를 숭배합니다.
내가 경배하는 형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로새서 1:15),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제가 우상 숭배자라면 그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저는 우상 숭배자입니다.
나는 그를 숭배함으로써 신성모독을 저질렀고, 그는 내가 그를 숭배하게 함으로써 신성모독을 저질렀습니다.
제 영혼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당신 편을 들고, 나는 내 편을 들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기회를 잡을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디모데는 디도서 2장 13절에서 요한과 함께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그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베들레헴에 처음 오신 구세주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장 8절에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보좌는 영원토록 영원합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을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말합니다. "내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1800년 이후에 인쇄된 많은 버전이 기본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전복하기 위해 고안된 버전이기 때문에 히브리서 1장 8절의 구절이 변경된 것을 잘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1장 8절의 구절이 이렇게 나오지 않도록 성경을 바꾸면 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에 앉으소서".
진리에 대한 교리적 편견이나 인종적 편협한 분리주의적 편견이 담긴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넓은 마음과 자유롭고 관용적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 히브리서 1장 8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을 전복하는 성경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편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유다는 유다서 25장에서 구세주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축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일하신 지혜로우신 우리 구세주 하나님을 위하여.
당신의 구세주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골로새서 2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그분(그리스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육신으로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하고 완전한 신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새 성경 마태복음 27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세주를 모욕하고 모독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누가 번역했든 왜곡된 본문이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서 사본의 99% 가까이가 일치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1%의 사본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의 변형에서 우리는 성육신하시기 전 그리스도의 영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예수님을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가 아무 의미도 없다면 잠을 자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삼위일체의 일원으로서 육신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재와 영광스러운 환생을 의심하거나 부정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항상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구세주를 비방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를 잡고 싶다면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귀찮게 하지 마세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겨울 지경입니다.
"우리가 당신처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비방했다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오, 당신은 당신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모욕한다고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받아들이고 거부하고 싶은 것은 거부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격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때리고 싶다면 그건 여러분의 일입니다.
알아서 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 판단하세요.
하지만 제 탓으로 돌리지는 마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는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지 마세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을 때.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참고 자료를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적어두세요.
요한복음 5:18
요한일서 2:23
레위기 24:12
요한복음 10:30
요한복음 14:9
골로새서 1:15
요한복음 10:33
빌립보서 2:5-6
요한복음 17:5
요한복음 1:1
요한일서 5:20
히브리서 1:8
Jude 25
골로새서 2:9
마태복음 17:2
고린도후서 4:4.
이제 이 구절들은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가 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어떤 의미도 암시하거나 제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나한테 화내는 건 시간 낭비예요.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론입니다.
신학 분야에서는 조직신학, 성서신학, 교리신학, 실천신학, 주석신학 등 다양한 학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관계가 아들로서의 관계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았고 항상 영원히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살게 될 성육신 이전의 아들로서.
이것이 성경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성부와 동등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룬 오늘의 구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단원에서는 아버지께 종속된 사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다룰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아래 있습니다.
당신이 말했죠. "두 입장은 모순된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싸움을 고집하는 불신자의 마음속에서만 그렇게 합니다.
이 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합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
저는 '사람으로서'가 아버지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격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동등합니다.
다음 주 다음 세션에서는 아버지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다룬 신약과 구약의 수많은 구절을 다룰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