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22부.
2024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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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웹 신학 세미나에서 기독론이라는 위대하고 장대한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시리즈에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본성과 신격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전 공과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과 삼위일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위치를 보여주는 성경 구절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하는 논증과 이러한 논증에 대한 성경적 답변에 대해서도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물론 이 세션에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세미나나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로 교리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결국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교훈에 유익합니다. (디모데후서 3:16)
이제는 일종의 긍정적인 사고로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요즘의 주된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정신적 텔레파시 또는 초월적 명상이라는 심리적 접근 방식으로, 절대적인 진리를 조심스럽게 피하는 일종의 진정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절대 진리의 책을 받은 성경 신자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당신의 진리를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7:17)
또한 휴거 전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는 매우 특이한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높이신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모든 이름 위에 높였나이다. (시편 138:2).
그러므로 성경이 기록된 첫 번째이자 주된 이유는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날에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않을 것이라고 읽었 기 때문에 요즘의 생활 방식이나 현대 유행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고 서로 잘 지내고 하나님을 믿고 기적을 믿는다는 이야기와 진리가 아닌 영적 매체와 관련된 모든 작은 평범한 종류의 정신적 인 것들을 이야기하는 데 시간과 인터넷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놀랍지 않아야합니다.
신학 세미나에서 우리는 진리가 진리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토론합니다.
이제 오늘 수업에서는 성부께 종속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이전 세션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동등성에 관한 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혹시 확인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네 번째로 다시 한 번 참고자료를 나열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균형 잡힌 책이며 항상 양면성을 제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지만 모든 사람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여자의 씨, 다윗의 씨.
구세주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 가장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신이신 분이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성경은 항상 그렇게 진술하는 데 매우 신중을 기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한 첫 번째 시리즈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에서 다룬 참고 문헌을 제시했습니다.
오늘 수업에서는 그의 인간성을 가르치는 구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그분의 본질적인 인간성, 즉 이 땅에서 아버지보다 더 낮고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성입니다.
이것이 오늘 세션의 주제입니다.
우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난 주에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동등하심과 공존에 대해 다룬 구절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일서 2:23
요한복음 5:18
레위기 24:12
신명기 6:4
요한복음 10:30
요한복음 14:9
골로새서 1:15
고린도후서 4:4
요한복음 10:33
빌립보서 2:5-6
요한복음 17:5
요한복음 1:1
요한일서 1:1
요한일서 5:20
히브리서 1:8
Jude 25
골로새서 2:9
이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임을 보여주기 위해 성령께서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구절들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신격과의 관계에서 그는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는 여호와의 여호와입니다.
요한 계시록, 19장. 물론 그렇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요한계시록 22:13)
오늘 레슨에서는 좀 더 독특한 관계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 땅에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남자로서 아버지의 아들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을 때 낮은 자리를 자원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겸손과 종속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신학자들의 모든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보다 낮기 때문에 단지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시하고 그분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종교 광신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대중의 믿음과 오해와는 달리 두 가지를 모두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14:28.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들었지? 내가 떠나갔다가 다시 너희에게 온다고. 너희가 나를 사랑했다면 기뻐했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지상의 인간으로서)가 영원한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음을 주목하세요.
예수 그리스도,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서.
살과 뼈와 피를 가진 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들었지? 나는 떠났다가 다시 너희에게로 온다.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면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니라(요한복음 14:28).
이 구절들이 이단들에 의해 어떻게 중단되고 엉망이 되어서 그렇지 않은 모든 종류의 것들을 가르치는지 주목하세요.
모든 무신론자들의 독특한 가르침은 아버지가 나보다 크시므로 한 신이 다른 신보다 크며, 큰 신이 작은 신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불경스럽고 음란한 저속한 헛소리는 뉴스에서 이차 방정식을 푸는 것보다 성경을 가르칠 일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거의 100년 동안 전파되어 왔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8절에 나오는 말씀은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 땅의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성부께 종속된 사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물론 한 신이 다른 신에게 종속된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1장 5절에 따르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을 때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천사들 중 어느 천사에게 그가 언제든지 말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것은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발생했으며 창세기 1장 이전에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고 요한복음 1장 1절이나 요한일서 1장 1절 등 누군가가 거짓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문맥에서 파헤쳐서 만든 다른 잘못된 개념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세션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성경에 따르면 누구나 거짓말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구절에 없는 단어를 구절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세례'라는 단어가 없는데 '세례'라는 단어를 추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로마서 6장 3절에 '물'이라는 단어가 없는데도 '물'이라는 단어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인물'이라는 단어를 가져오는 것처럼 구절에서 한 단어를 가져옵니다.
성경이 거짓말을 가르치려면 성경 구절 한 구절만 꺼내면 됩니다.
또는 구절을 넣거나 문맥에서 구절을 빼기도 합니다.
이 모든 작업에서 성경을 사용하여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당신의 진리를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7:17)
이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말씀으로 너희는 깨끗해졌다. (요한복음 15:3)
일부 설교자 사제 장로 주교 지도자 추기경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어리석음과 일치시켜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역겹고 가증스러운 더러운 일입니까?
히브리서 1장 5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탄생이 일어났습니다.
천사들 중 어느 천사에게 그가 언제든지 말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그리고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
그리고 이때가 바로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때이며, 창세기 1장 1절 이전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삼위일체 문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창조의 시작이라는 요한계시록의 구절에 대해 무신론자들이 특이한 왜곡을 가한 것에 대해 논의했을 때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 세션에서 충분히 논의되었으므로 오늘 레슨에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지칭합니다. 이는 시편 2:7에 예언된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법령을 내가 선포하리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이제이 아들의 시작은 영원한 하나님의 기원을 의미합니까?
당연히 아니죠.
이 아들의 시작은 신격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을 의미합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 9장 6~7절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으로서 결코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리고 정부는 그의 어깨 위에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에는 그의 정부와 평화의 증대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명령하고 세우실 것입니다.
그는 항상 존재했고 만물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시편 2:7의 출산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칼빈주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5점 튤립과도 상반됩니다.
동정녀 탄생은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여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종속된 사람으로 잉태된 사건(누가복음 1장 35절)을 말합니다.
너희에게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이제 이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저는 인간 그리스도 예수가 아버지께 종속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11개의 구절을 살펴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기독론을 연구하면서 아들과 아버지와 신격의 관계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영원한 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합니다.
유일한 의심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또는 믿는 것에 대한 것일 수 있습니다.
유일한 의심은 당신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혼란스러워했던 당신을 가르친 사람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혼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게 명확합니다.
네 번이나 구절을 제시했습니다.
네 번 놓친 경우에는 언제든지 돌아가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어둠 속에 있거나 무지한 채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진술을 거부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독론적 문제와 기독론적 논의의 문제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격 안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으로 분명히 제시합니다.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육신으로 거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9)
동시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에 의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의 아들로 지상에 머무르셨던 분이라고 말합니다.
신이 아닌 실제로 성장한 인간.
신은 키가 커지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복종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아닌 사람이 피곤해졌습니다.
그리고 신도 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설교자는 이 땅의 어떤 설교자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목사나 장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는 그것들은 그에게는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이 있도다, 시몬 바르조나.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계시하셨느니라. (마태복음 16:17)
전능하신 하나님, 성령께서 눈을 뜨게 하셔서 볼 수 있게 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분명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절대적인 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영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멸의 신격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한 본성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살과 뼈를 가진 인간으로 이스라엘에 보내진 유대인 메시아, 인간 그리스도 예수.
예루살렘에 있는 정치적 실체에서 문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다윗의 왕좌에 앉아 나라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이는 건전한 교리의 말씀으로 양육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는 성경 교리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 하나님에게 종속되었던 11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아버지 때문에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탱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6장 5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나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직업입니다.
2번.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이와 같이 행하십니다.
3번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따르면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그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이제 어디로 가는지 아시겠죠?
이 구절들은 분명히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 보내진 지상의 메시아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인자는 구약성경의 아버지 여호와 하느님에게 종속되어 그 아래에 복종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분의 신성한 성육신의 덕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네 번 연속으로 제시한 30개의 구절에서 두 구절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에 이 두 구절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려고 할 때 많은 빛을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설교자 장로와 목사가 이해할 수없는 것이므로 다른 것을 배제하기 위해 한 세트를 선택하여 성경을 반으로 자르고 건전한 교리의 교사가 아닌 거짓 교리의 교사가됩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않고 귀가 가려운 교사들을 스스로 쌓아 진리에서 돌아서서 우화로 변할 것이라고 말한 이러한 전문 사역자들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인간 그리스도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종속성에 대한 교훈을 계속 이어갑니다.
4번. 아버지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8절에 따라 아들에게 권세와 지시를 주셨습니다.
제가 직접 내려놓습니다.
그의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있고, 다시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 계명은 내가 아버지께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26절에서도 같은 추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들었던 것들을 세상에 전합니다.
그래서 인간 그리스도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5번. 아버지께서는 요한복음 5장 36절과 요한복음 17장 4절에 따라 구주께서 성취해야 할 특정한 일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끝내라고 주신 일, 내가 하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일을 마쳤습니다.
이제 어떤 변화도 없이 지속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세요.
성경은 시작과 끝이신 알파와 오메가이신 영원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동등하심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동시에 그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서 아버지 하나님 아래에 복종하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모순이죠"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시다면
그런 다음 자신의 책임 하에 거부하세요.
기회를 잡으세요.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든 없든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신성한 명령에 따라.
하나님은 참되시지만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되게 하소서. (로마서 3:4)
6번 예수 그리스도는 왼발이 오른쪽 귀인 것처럼 피조물인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개가 고양이인 것처럼 덜 신이거나 피조물인 신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신격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사람 '그리스도 예수'가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취한 굴욕과 성육신에서 비천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위치에서 그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람 때문에 신격을 완전히 떠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삼위일체와 영생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한 본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7번. 아버지께서는 누가복음 22:29에서 아들의 왕국을 지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읽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 내게 임명한 것처럼, 나는 너희에게 왕국을 임명한다.
여덟 번째.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종속되었다는 것을 아는 여덟 번째 이유는 현재 교회 시대에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머리되심에 복종하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을 읽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보셨을 겁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는 삼위일체 안에서 동등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결코 머릿속에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도둑질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 (빌립보서 2:6)
하지만 화신은 스스로를 낮췄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모습으로 발견되신 그는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8)
이제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세요.
네,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합성 누룩 시대에 우리는 이 작은 허리 유형의 기독교, 이 밀크셰이크 유형의 교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경을 비틀고 왜곡하고 사람들을 비웃고 우롱하는 성경을 거듭난 성경 신자는 더 이상 구독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주요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모든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는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인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적절한 구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을 구분합니다.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라면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명료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지리라. (마태복음 15:14)
히브리서 7장 25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읽습니다.
그분(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것을 보니, 그분(그리스도)께서 또한 그들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 구원의 길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제 저는 그것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반대하는 구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명예훼손 방지 연맹에서 혐오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힘든 사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당신이 말했죠. "뭐든지요, 친구들."
그의 말을 들으셨죠?
이렇게 말하죠. "저는 믿도록 자랐습니다."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합니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귀하는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결국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말에 대한 당신의 말일 뿐입니다, 친구.
그리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저에게 화를 낼 권리가 없습니다.
제가 쓴 책이 아닙니다.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나는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말을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실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33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대학 교수님이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순전히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거나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길이 아니라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아버지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어 가실 때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종속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 그리고 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에게도.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주목하세요.
맙소사, 맙소사, 왜 나를 버리셨나요?
그가 말한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내 아버지 내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버지와 아들은 삼위일체에서 신격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종속의 정도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누가복음 22장 29절에 따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왕국을 주셨다고 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임명한 것처럼, 나는 너희에게 왕국을 임명한다.
고린도전서 15장 24절에서 아들은 이 나라를 아버지께 돌려드릴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가 나라를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줄 때가 올 것입니다.
종속의 기간은 이 시대를 넘어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7~28절에서 읽은 것처럼 백보좌 심판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까요.
그러면 아들도 만물을 그 아래에 두신 이에게 복종하여 하나님이 만물 안에 모든 것이 되시리라.
성경이 옳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믿는다면 갈등은 없습니다.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항상 동등하셨고 지금도 동등하십니다.
인간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이 위치를 제쳐두고 자기 굴욕 속에서 부모의 자녀로서 아버지께 종속되는 자리를 선택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위대한 일곱 가지 겸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빌립보서 2장 5-8절을 참조하세요.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 마음을 품으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그는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죽음,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사랑스럽지 못한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사랑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은 그리스도가 일곱 번 굴욕을 당하는 일곱 가지 굴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마지막 단계로 완전히 타락하여 적들 앞에서 나체로 묶여 교수형에 처해지는 치욕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평범한 범죄자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불경건한 사람의 손에 의해 사형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17)
여기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주셨음이라. (요한일서 4:10)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요한복음 15:13)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칭찬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로마서 5:8)
또는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6)
이것은 신실한 말이며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합당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으니 내가 그 중 으뜸이니라. (디모데전서 1:15)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36)
이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룬 오늘 수업을 마쳤습니다.
다음 두 세션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두 번의 강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의 다른 부분인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부분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자는 다윗의 후손인 여자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이 두 가지 수업이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위대하고 복된 진리를 배웁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여러분처럼 고통받고 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그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히브리서 7:25).
그는 사람처럼 태어나 숨 쉬고 먹고 자고 살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한 분의 중보자,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2:5)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