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24부.
2024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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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사 여러분,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웹 신학 세미나에서 진지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연구인 기독론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완료하지 못한 세션이 더 많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강의는 약 34개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생애에 대한 예언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주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제 오늘과 앞선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다루는 축복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전 시간에도 언급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현현하신 하나님이셨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 주로 인간으로 계셨습니다.
그분은 실제 인간의 이름과 실제 인간의 조상을 가졌습니다.
그분은 육체를 소유하셨고 인간의 발달 법칙을 따르는 육체를 가졌습니다.
신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 진리를 배우려는 하나님의 말씀의 학생은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오늘날 현대 기독교에는 교리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거나 교리 문제가 제기될 때 회피하는 것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전혀 본받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신자.
기독교 신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으며 무엇보다도 교리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적인 문제를 피하려는 열광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문제의 진실은 현대 기독교인은 진리를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반대하는 이유는 성경이 당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자신이 믿도록 배웠던 것과 상반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것을 사실상의 진리처럼 말하지만, 오늘날 많은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설교자들이 성경에 들어와서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똑같은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해서 특별히 진실이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소 정신없는 상황이지 않나요?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형제님. 이 모든 상반된 목소리와 이 모든 다른 것들을 고려할 때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구절을 알려주면 됩니다.
그 구절을 펼쳐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첫째, 그가 성경 구절을 제대로 인용했는지 확인하세요.
"천국"이 되어야 할 곳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인용하고, "하나님의 왕국"이 되어야 할 곳에 "천국"을 인용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전치법이죠.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구절이 등장하는 문맥에서 인용했는지 확인하세요.
고대 희생자는 여전히 선하고 거룩합니다.
언제나 선합니다.
문맥이 없는 텍스트는 구실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어가는 진실입니다.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방법은 단순히 그 구절이 등장하는 문맥에서 구절을 떼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즘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전 세션에 함께하지 않으셨다가 이 자료를 손에 넣으신 분이 계시다면, 참고 문헌을 간단히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공부하기에 적절한 참고 문헌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자, 지금 여러분에게 제공할 참고 자료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그분의 인성에 대해 논의했던 이전 세션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이름이 주어졌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마태복음 1:21
디모데전서 2:5
누가복음 19:10
사도행전 7:56.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조상을 가졌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누가복음 2:7
갈라디아서 4:4
사도행전 13:23
마태복음 1:1-16
히브리서 7: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소유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언급했습니다.
요한복음 1:14
히브리서 2:14
요한일서 4:3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범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간 발달의 법칙을 따랐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분은 성장하셨습니다(눅 2:40).
질문도 하셨습니다(눅 2:46).
지혜가 자라나셨습니다(눅 2:52).
순종을 배웠습니다(히브리서 5:8).
그는 고난을 받았습니다(히브리서 2:18).
목수로 일하셨습니다(막 6:3).
그분은 인간 나이로 기록된 수년 동안 성장하셨습니다(눅 3:23).
그리고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태복음 4:1-1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성경적 증거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고 앞으로도 수시로 언급하겠지만, 어떤 사람의 교리를 확인하는 방법은 그 구절을 찾아서 읽고 그가 진실을 말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구절이 나오는 구절, 즉 문맥을 주목하세요.
문맥이 없는 텍스트는 구실일 뿐입니다.
지옥이 얼어붙을 때까지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구절의 출처나 내용을 말하지 않고 단순히 인용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혹시 누군가 사도행전 2장 38절을 인용하며 그것이 구원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구절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사도행전 2장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구절을 성경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면 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장에서 아무도 답을 얻기는커녕 질문조차 하지 않았어요.
사람 참 이상하지 않나요?
사도행전 2장 37절, 사도행전 2장 38절 바로 앞 구절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장담하건대, 설교자가 사도행전 2장 38절에 이르러서 그 구절을 인용했을 때 그 장을 찾아본 사람은 다섯 명도 안 될 겁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렇게 하면 구원을 받아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면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왜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나요?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지옥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지 않자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불경건한 세대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구하십시오. (사도행전 2:40)
놀랍지 않나요?
그래서 이 세션에서는 성구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성구를 구하고 성구를 적을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참고 자료를 보고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매일 경전을 검색하여 이러한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세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교훈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인간 조상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는 육체적 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름을 부여받았고, 인간 발달의 법칙을 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범한 인간의 본능에 감동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부 사항에서 우리는 그것들과 하나님의 속성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절대적 무한성과 영원불변성을 지닌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는 신은 우리가 지금부터 읽으려는 내용과 전혀 공통점이 없습니다.
우선 그는 배가 고팠습니다.
마태복음 4장 2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40일 밤낮을 금식하고 나니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8절에 주목하세요.
아침이 되어 도시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배가 고팠습니다.
신은 배고프지 않습니다.
주님은 구약 성경에서 제사를 드리는 구약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 개의 언덕에 있는 소는 내 것이다. 내가 배고파도 말하지 않겠나이다. (시편 50:10-12)
예수님은 목이 마르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7절에서
사마리아의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마시게 하소서.
요한복음 19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울부짖으셨습니다.
목이 마르다.
신이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세요?
예수님이 그러셨죠.
그는 지쳤습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4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곱의 우물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행에 지쳐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신이 지칠 것 같나요?
이사야서에서 그는 지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처럼 지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피곤해져서 쉬려고 자리에 앉으셨어요.
그는 평범한 인간의 본능에 감동했습니다.
그는 잠을 잤습니다.
마태복음 8장 24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리고 보라.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파도에 덮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들어 있었다.
신이 잠을 잔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이 그랬죠.
이제 우리가 이 증거를 모아 그리스도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대한 양의 증거를 만들어낼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유주의자들은 죽어가는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말하듯 그것을 움켜쥐고 말합니다.
"저기 보시다시피 그는 자신이 믿고 가르친 것을 위해 죽음을 택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가 자신을 구한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육신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루는 구절을 만들면 어떤 JW는 그것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 보시다시피 그는 피조물이지만 아버지 하나님보다 못합니다.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덜 신이거나 예수는 모든 신이었고 실제로 사람이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인간이 아니었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지리라. (마태복음 15:14)
그는 사람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남자로서 사랑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과 요한복음 11장 36절에서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바라보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하길, 그가 어떻게 그를 사랑했는지 보라!
그는 연민을 가졌습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에서
예수님은 기절해 있는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이렇게 말했죠.
예루살렘, 예루살렘. 암탉이 날개 아래 닭을 모으듯이 내가 너희 자녀들을 얼마나 자주 모았겠느냐. (마태복음 23:37)
그것이 바로 연민이고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화를 내고 슬퍼하는 것처럼 화를 내고 슬퍼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4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합법적인가, 아니면 악을 행하는 것이 합법적인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죽이는 것이 옳은가? 그러나 그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슬퍼하셨고 분노로 주위를 둘러보셨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2장 16절에 보면 성전을 정화할 때 그의 의로운 분노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경건한 신뢰를 표명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육신의 날에 그가 죽음에서 구해 주시고 그가 두려워하는 가운데 들으신 분께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렸을 때 누가 그를 구해 주셨습니까?
요한복음 11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여자가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으로 탄식하시며 괴로워하셨다.
요한복음 11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처럼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울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오셨을 때 그는 도시를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서는 간구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강한 울음과 눈물로.
이제 성경을 믿는 사람이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큰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왜 우리가 의인화, 의인화된 표현으로 하나님을 계속 말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슬퍼하고 회개하고 슬퍼하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눈과 풍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
봤죠?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냄새를 맡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코가 없습니다.
신은 눈이 없나요?
네, 하지만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33년 동안 인간 본성에 국한되어 계셨을 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인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걸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이 신성한데 어떻게 신이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을 받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2:14)
그리고 그 자연인이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든, 고등학교 1학년이든 도랑을 파는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는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20년 동안 세미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은혜와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된 속죄와 완전한 타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지혜롭습니다. (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이 가장 큰 장난을 친 것은 한 사람을 내려 보내 아기로 이 땅에 오게 하셨을 때, 그 아기의 눈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원 불변성이 아기 품에 싸여 있었을 때입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23.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신 후 따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신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면이 한 장이나 나옵니다. (요한복음 17장)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전체 장입니다.
예수님은 몸과 영혼과 영을 소유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몸이 있었습니다(참조: 요한복음 1:14 히브리서 2:14 마태복음 26:12).
시신은 매장되었습니다(눅 23:52-56).
예수님에게는 영혼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8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이 극도로 슬퍼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27절 사도행전 2장 31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영혼은 죽음의 낙원으로 가서 지옥을 거쳐 내려갔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따르면 예수님에게는 인간의 영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을 읽으면 영은 죽어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즉, 그는 삼위일체, 삼부작을 가졌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신성한 삼위일체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육체와 영혼과 영을 가진 삼위일체적 존재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이는 신실하시니 또한 행하실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었다는 탁월한 증거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신은 죽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죽으면 우주가 멸망할 것입니다.
성경은 만물이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함께 붙들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구성됩니다. (골로새서 1:17)
그는 우주를 지탱하며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의복처럼 낡을 것입니다. 그리고 옷처럼 너희는 그것들을 접어서 바꾸어야 한다. (히브리서 1:11-12)
생명의 생물학적 조합은 죽음입니다.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니면 철학자들의 말처럼.
"철학을 올바르게 공부하는 사람은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이 원하는 것은 심판이 없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 우주의 에너지와 하나가 되는 영적 상태의 영적 증발로 증발하는 죽음을 원합니다.
주님은 죄에 대한 심판이 뒤따르는 죽음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설명해야 합니다. (로마서 14:12)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그분은 어둠의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시고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고린도전서 4:5)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은밀한 일과 함께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전도서 12:14)
Paul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사람의 비밀을 심판하실 날에. (로마서 2:16)
당신은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죽음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입니다.
인간에게는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는 모든 남성을 위해 정해진 규칙을 지켰습니다.
엘리야와 에녹처럼 규칙에 예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입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누가복음 23장 3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갈보리라고 불리는 장소에 왔을 때. 그곳에서 그들은 예수와 악당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는 오른손에, 다른 하나는 왼손에.
그리고 우리는 죽음의 고통을 위해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신 예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과 존귀를 얻었습니다.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죽음을 맛봐야 한다고요.
제한된 속죄가 아니라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고요.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맛보게 하소서.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죄인을 위해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죽음은 그분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였습니다.
그가 당선자를 위해 죽었다는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2장 9절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해석하는 사람들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맛보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9)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2:6)
많은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것이 곧 많은 것입니다.
그는 선택받은 자들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연구의 논리적 결론과 엄청난 내용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육체를 소유하고 계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가 올라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라, 그것은 나 자신이다. 나를 만져보고 보십시오.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니까요. (누가복음 24:39)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 27절에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손가락을 뻗어 내 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훨씬 후에 사도행전 7장 55-56절에서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나님 우편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굳게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보라, 하늘이 열린 것을 보노라. 그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다.
예수님은 인간이었으며, 두 가지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첫째, 그는 죄의 본성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요.
인간의 연약함에 관한 한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쳤습니다.
그도 우리처럼 목이 마르고, 우리처럼 배가 고팠습니다.
그도 여러분처럼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성장하는 것처럼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발달했습니다.
그는 인간이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된 사실입니다.
참고 자료를 한 번 더 알려드리니 적어두세요.
제 말만 믿지 마시고 하나하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굶주렸다. (마태복음 4:2)
그는 목말랐다. (요한복음 4:7)
예수님은 피곤해 하셨어요. (요한복음 4:6)
주님은 주무셨다. (마태복음 8:24)
예수님은 화가 나셨습니다. (마가복음 3:4)
그는 신음했다. (요한복음 11:33)
그는 울었다. (요한복음 11:35)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4:23)
그분에게는 몸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4 히브리서 2:14)
그에게는 영혼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38)
그에게는 영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46)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죽었습니다. (누가복음 23:33 히브리서 2:9)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27절과 사도행전 7장 55-56절에 따르면 그는 여전히 시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세션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실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문제는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이렇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자 사람으로, 육신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누가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른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는 누가 그렇게 가르쳤거나 그렇지 않다고 가르쳤나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제 다음 두 세션에서는 기독론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는 기독론의 고유한 연구에 속합니다.
다음 두 시간에는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에 대한 성경의 증언과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이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