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25부.
2024년 0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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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웹 신학 세미나, 즉 기독론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는 성경 구절과 성경 교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세션에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세션은 절대 진리인 성경 교리를 주로 다루는 신학 세션입니다.
성경이 그 자체에 대해 말한 내용과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세션에서 누군가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하기 위해 성경에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 주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제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신학교나 신학대학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을 발견할 때마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달려가서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말하게 만들어서 그렇지 않은 것을 증명하는 습관을 가진 교수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신학 분야가 아닙니다.
이 세션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성경이 스스로 말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최종적인 권위라고 가정하며, 성경이 가능한 한 성경에 대한 최고의 주석이라고 가정합니다.
물론 성경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는 성경 그 자체입니다.
마틴 루터가 말했듯이 교부들 중 일부는 교회 아기라고 불렸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나요?
그게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전 세션에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문제를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한동안, 적어도 22번의 세션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 22회 중 약 15회 정도는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과 사역을 다루는 성경 구절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입니다.
이전 방송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었으며 사람이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사람이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는 또한 그가 육신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풍부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신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하는 22가지 논증을 다루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러한 주장에 철저히 답했습니다.
매주 이 신학 세션을 함께 공부했다면, 이제 이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는 400개 이상의 구절이 여러분의 손끝에 있을 것입니다.
신격, 삼위일체와 관련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문제들.
400구절이 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에 대해 논의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아담의 본성, 즉 죄 본성이 없는 의미에서 원죄 없이 태어났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인간 아버지 없이 동정녀로 태어났다는 사실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절과 구절을 비교하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공과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평생을 죄 없이 사셨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단 하나의 죄도 짓지 않고.
즉, 그는 어떤 죄의 오염도없이 살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부처님이나 레오세, 무함마드 등이 차지할 수 없는 독특한 위치에 즉시 올라서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체계가 성경적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 기독교, 이제 제가 기독교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셨습니다.
성경적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구원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기독교의 일부입니다.
성경적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생명이시며,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는 위대한 진리를 항상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잘못된 점입니다.
성경의 잘못된 점은 성경이 인간의 본성에 반하고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전에 어떤 종교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종교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상의 상태의 모든 사람은 완전히 허망합니다. (시편 39:5)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습니다. (이사야 64:6)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고 알려줍니다.
성경은 두 가지 종교를 구분합니다.
하나님의 종교는 구원이 완성되고 완료되며 공짜 선물을 받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곳입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는 항상 성경의 맥락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점에서 이슬람교 불교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도교 유교 라마크리슈나는 모두 같은 그룹입니다.
즉, 모든 행위는 독선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따르는 행위의 체계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성경을 반대하는 이유와 성경이 세상을 반대하는 이유는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한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스스로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2:8-9)
우리가 행한 의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디도서 3:5)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특별했습니다.
완전히 발견되지 않은 생명,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렇게 주장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그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고, 기록은 그를 죄가 없는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랬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토끼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소개합니다.
그는 약해 보이는데, 이는 죄입니다.
그는 의심하는 것으로 표현되며, 믿음이 아닌 것은 죄입니다.
그는 죄인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글쎄요, 그랬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여기까지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법을 어겨야 범법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 이상의 법을 어겨야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경찰 법원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법 위반자는 법을 어깁니다.
그가 브레이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예를 들어, 성경에 나오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유사점을 찾아서 무차별적으로 하나의 큰 까치로 묶으려는 대신에.
종교적 스승이 죽은 시신과 함께 추종자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시체가 테이블 위에 있어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말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부처님의 시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무함마드의 시신은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마오스나 통, 레오스의 시체는 그들의 작은 빨간 책과 가르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는 단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시신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종교는 15센트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기독교입니다.
모세와 다윗의 죽은 시체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어도 정통 유대인에게는 종교에 관한 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성경의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오지도 않은 죽은 구세주와 잘 지낼 수 없는 종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죽은 스승의 가르침이나 가르침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종교는 똑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어떤 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활에 달려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위대한 주제에 도달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공과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500명의 목격자가 그가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을 목격했고, 그들의 증언은 이후 결정적으로 반박된 적이 없는 서면 자료로 남았습니다.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죄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죄 없는 삶은 하루 24시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7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 4절에서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일을 마쳤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죄의 길로 가는 것이므로,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것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시간 내내 그 길에 머물러 있습니다.
죄는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등 외부적인 것입니다.
또한 내부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마태복음 15:19).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생각은 나중에 악한 행동의 근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속의 풍요로움에서 그의 입이 말한다. (누가복음 6:45)
하루 종일 일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저주하는 남자.
그가 일하는 곳에서 "이것도 지옥, 저것도 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옥과 저주를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의심이 든다면 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이나 지옥에 있다면 지상에서도 천국과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세요?
왜냐하면 그들은 지옥에 도착하기 전에 지옥을 미리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는 악행을 삼갔을 뿐만 아니라 악한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선하고 거룩한 것에 완전히 순응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6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거룩하고 무해한 분. 더럽혀지지 않았고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죄가 없음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처럼. (베드로전서 1:19)
이 생각은 히브리서 9장 14절의 히브리서 기자에게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더 당신의 양심을 죽은 행위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이제 그리스도의 죄가 없다는 사실은 이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27절과 4장 30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자녀 예수님.
이 표현은 두 번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고 더럽혀지지 않은 거룩한 존재였음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거룩한 자녀 예수님.
이제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막 1:24)로 인정했습니다.
무함마드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고 부처님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
악마나 귀신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사람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4장 34절의 귀신들이 외칩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인 당신을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죄가 없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마귀들의 간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감받은 분명한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22.
그리스도는 죄를 짓지 않았고 그의 입에서 사악함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요한일서 3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나타나셨고 그분 안에는 죄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구세주 안에는 죄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죄가 없습니다.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종교와 초월적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우리는 죄에 대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한 남자가 한 남자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빚진 돈을 갚을 수는 없지만 다시는 빌리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여기 봐요. 당신은 저한테서 천 달러를 네 번이나 빌렸어요. 그건 어때요?"
그 동료가 말했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다시는 빌리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미 갚아야 할 빚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 이 순간부터 앞으로 30년 동안 죄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백로그는 어떻게 되나요?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그를 죄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죄는 완전히 낯선 존재였으며, 예수님이 죄에 대한 첫 경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으로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고 여러분을 위해 죄가 되어 저주가 되셨을 때였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대제사장이 없으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만질 수 없지만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십니다.
"아직 죄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셨나요?
요한일서 3장 3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존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깨끗한 사람처럼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살았던 가장 예민한 교양 있는 사람들보다 더 의에 민감한 마음과 정신, 영혼을 가진 완전한 순결, 흠 없는 완전한 죄 없는 인성이셨습니다.
한 소년이 어느 집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한 여성이 찾아와서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꼬마야, 아빠 집에 있니?"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 그는 아파서 못 와요."
그리고 문학을 가지고 다니던 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들아, 그는 정말 아프지 않단다. 병이란 건 없어. 그냥 아프다고 생각하는 거야, 알겠니? 그냥 아프다고 생각하는 거야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자 소년이 말했습니다.
"예."
약 일주일 후, 같은 여성이 개종자를 구하러 왔다가 자신의 쓰레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문 앞에 있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아빠 집에 있니? 그리고 내가 말한 거 잊지 마."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집에 왔어요."
그녀는 말했다.
"만나도 될까요?"
그러자 어린 소년이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못 오세요."
여자가 말했다.
"안 될 이유가 없죠? 그리고 지금 내가 말한 것을 잊지 마세요."
"네, 잊지 않았는데 못 오네요. 이제 그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순수하게 완전하셨고, 그 어떤 정신적 체조나 정신적 조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죄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에 관한 수많은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자신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서도 자신의 죄는 보지 않으셨습니다.
좀 이기적이지 않았나요?
그가 부처나 무함마드와 같았다면, 자신은 죄를 고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를 계속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을까요?
다소 이기적이지 않나요?
요한복음 8장 4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중 누가 저에게 죄가 있다고 확신하나요?
그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정직하게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누구에게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죄의 용서를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저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수를 고백한 적이 없는 위대한 스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그 자리에서 판단하면서도 자신은 판단하지 않는 위대한 스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걸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하나요?
그가 육신을 입고 나타난 신이 아니라면 그건 광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예수 재판관이 그를 조사하고 세 번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전혀 잘못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8:38)
책임감 있는 판사의 증언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잘못을 찾지 못했습니다"를 세 번 반복합니다.
적들이 당신을 법정으로 끌고 간다면 판사가 당신에 대해 그렇게 말할까요?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아내 본디오 빌라도 부인.
그녀는 그리스도께 호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개인적인 관심은 없었지만 마태복음 27장 19절에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정의로운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나요?
누가복음 23장 41절의 십자가에 달린 도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시겠죠.
부처님이 잘못된 일을 한 날마다 1달러씩 주면 파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겁니다.
유죄를 선고받은 살인범이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증언은 사형선고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지상에서 사역하던 주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간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리스도의 결점이나 약점, 죄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3년 반 동안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눈 제자 중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익숙한 것은 경멸을 낳습니다.
3년 반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먹고 자고 걸었던 사람이 그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그에게서 잘못된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해야합니까?
역사상 어디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했는지 알려주세요.
가룟 유다는 기적을 보고, 가르침을 듣고, 예수를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는 결국 은 30냥을 받고 주님을 배신했고, 마태복음 27장 4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무고한 피를 배신한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7절에 나오는 로마 백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강인한 로마 군인의 멋진 증언이 있습니다.
증거를 보세요.
그의 제자들은 그에게서 잘못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에게서 제대로 된 잘못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판사가 괜찮다고 했어요.
판사의 아내는 그가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사형수는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팔아넘긴 남자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사형 집행을 담당한 백부장은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증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세션에서는 구세주의 죄 없음을 반대하는 몇 가지 논거를 살펴보고 이에 대해 자세히 논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아무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하세요.
"당신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안식일을 어겼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주님이 다른 모든 것의 주님이신 것처럼 안식일의 주님이심을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왕자 바알세불이 쫓아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24)
그리고 그가 대답했을 때,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이 대답하신 질문과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얼마나 많은지 보신 적이 있나요?
그들이 그 모든 일을 겪었을 때, 예수님은 마침내 최고의 두뇌를 가진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이제 질문 하나만 할게요."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아들을 주님이라고 불렀어요. 다윗의 아들이 메시아라면 왜 다윗은 자신의 아들을 주님이라고 부를까요? (마가복음 12:36-37 참조) 유대인 아버지가 아들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아니죠.
그 질문을 했을 때 성경이 그 사람들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날부터 아무도 감히 예수님께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2:46)
조만간 친구 여러분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바로 직면하는 것이 좋습니다 .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고 그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좋습니다.
백보좌 심판대에서 영원토록 고개를 숙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고백한 그분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영광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 살아갈 그 어떤 종교적 스승보다 뛰어납니다.
어떤 제자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무엇을 믿거나 어떤 사람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는 가짜라고 믿는 사람보다 우월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과 구세주로 신뢰하는 우리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한 분의 중보자, 곧 우리와 똑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직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슬픔을 아는 사람, 슬픔에 익숙한 사람. (이사야 53:3)
그리고 그는 우리의 징계를 견뎌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평화를 누렸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써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사야 53:5)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죄의 제물로 바치셨듯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믿기지 않으시다면 직접 해보세요.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테스트해 보세요.
그리고 그의 시신이 아직도 예루살렘의 땅속 구멍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오늘 그분을 구세주로 믿으세요.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구세주는 죽지 않으셨고, 묻히지도 않으셨습니다.
나는 영원히 살아 있고 지옥과 죽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8)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