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29부.
2024년 0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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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웹 신학 세미나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생애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기독론이라는 학문에 제대로 들어갑니다.
신학 공부에서 공부해야 할 다른 매우 중요한 과목입니다.
우리는 약 12회에 걸쳐 여러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삼위일체 문제입니다.
신학을 제대로 다루는 것, 하나님에 대한 연구.
이제 앞으로 우리는 성령의 사역 인 공압학을 공부할 것입니다.
인류학, 인간과 창조에 대한 연구.
천사학.
악마학.
구원론, 구원을 연구하는 학문.
죄에 대한 학문인 하마르티올로지.
그리고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위대한 교리들.
종말론의 제목을 제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론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간에는 그리스도의 계명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당연히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할 것입니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주님이라 부르나이까. 내가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시나이까? (누가복음 6:46)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 그리스도를 신뢰하면서 그가 명령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모호합니다.
자유주의자나 현대주의 설교자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구속주로 믿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의 모범이나 삶의 패턴을 따르겠다고 공언합니다.
이것을 믿는다고 공언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명령을 무시하는 사람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있을 수 있을까요?
이제 오늘 이 단원에서는 여러 가지에 관한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회개에 관한 주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믿음에 관한 그의 명령.
새로운 탄생에 관한 그분의 명령.
물론 이러한 계명은 명령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이렇게 하자"와 같은 집단주의적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도 됩니다."와 같은 암시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렇게 하세요" 또는 "이렇게 하지 마세요"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시 권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권위를 원망하고 권위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왜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 먼저
회개에 관해서는,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실천해 본 적도 없고 회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누가복음 13장 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멸망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3:24에서
해협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쓰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겠으나 들어가지 못할 것이니라.
회개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지만 회개의 본질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었던 돼지우리 속의 탕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탕자는 일어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다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 (눅 13:3)
알겠습니다.
믿음과 관련하여 우리는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을 하신 분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명령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그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왜 여러분 중 일부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을 고집하는가?"라며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환경미화원보다 더 고려하지 않으면서 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기도문을 반복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세요.
그것은 계명입니다.
이를 준수하셨나요?
요한복음 14:1.
신을 믿으시니 저를 믿으세요.
이것은 무신론자나 유신론자가 되지 말라는 분명한 명령입니다.
무신론자나 유신론자처럼 신만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것을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한 계명이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는 교회에서 그것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해당 구절의 15절 이내에 '세례'라는 단어가 앞뒤 어느 방향으로도 나오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그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종교를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그분을 믿으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해보셨나요?
거듭남은 회심하게 하는 성령의 신비한 역사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으니 기뻐하십시오.
하지만 거듭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것을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무도 선하고 그 열매도 선하게 만드십시오. 아니면 나무를 부패하게 만들고 그 열매를 부패하게 만드십시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으니까요.
전환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는 오래된 나무를 하얗게 칠하거나 고치거나 가지치기를 하거나 새 가지를 이식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나무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명령형).
예수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누가복음 24:49(명령형).
예루살렘 성에서 높은 곳에서 권능을 부여받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이 두 가지 작업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처리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등장한 문맥을 보면 요한복음 20장 22절과 누가복음 24장 49절입니다.
성령은 처음에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자는 암묵적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나를 따르라.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아무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리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21장 22절에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27절에서 마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팔로우하세요."
그는 "원한다면"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를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기도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몇 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받아들이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로 특징지어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21장 3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십시오.
누가복음 22장 40절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세요.
누가복음 10장 2절에서
그러므로 추수의 주님께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6장 28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당신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이것이 바로 계명입니다.
그는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았고, 그것이 현대 기독교인을 화나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기독교인은 배교자이며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합니다.
이러한 건전한 교리 진술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매우 건전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것을 가르치고 건전한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르는 교리조차도.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디모데전서 6:3-4)
하나님의 성도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위대해지며, 그리스도는 믿음을 명령하십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이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에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불신은 멀리하세요.
여러분은 믿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7절에서
기운 내세요. 그것은 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성경을 찾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각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매일 자신의 빛을 밝게 비춰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당신의 선한 일을 보게 하십시오.
마가복음 5장 19절에서 예수님은 새 개종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얼마나 큰 일을 하셨는지 이야기하세요.
이것이 바로 계명입니다.
아무도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가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도 괜찮아요."
"네 친구들에게 돌아가서 말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말하세요.
현대 크리스천은 그런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라는 교훈적이고 권위적이며 명령적인 의무 명령이죠.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을 읽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영혼을 다하여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그리고 네 힘을 다해. 이것이 첫 번째 계명입니다.
마태복음 4장 10절에서 주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
물론 이제 이 모든 진술이 명령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거나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비추도록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영혼을 다하여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그리고 네 힘을 다해
이것이 첫 번째 계명입니다.
제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현대의 기독교인은 자신의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상대적이라고 믿습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동의하는 사람에 대한 상대적 개념입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정당한 권리를 제쳐두고 다른 누군가가 틀렸다면.
그러나 오늘날의 평균적인 그리스도인은 100년 전의 평균적인 구원받지 못한 사람보다 인격이 부족하고 진리의 토대 위에서 원칙과 윤리적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아, 저 사람은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현대의 기독교인으로서
전부는 아닙니다.
전면적인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평균적인 크리스천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평균이라고 말하는 것은 27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평균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전임 목회자로 11년, 전임 전도사로 11년, 전임 성경 교사로 5년을 지낸 사람만 말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기독교인, 그리고 저는 단순히 제 경험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700회 이상의 미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크리스천은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1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저의 것을 시저에게 바치세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권위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든 아니든 그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는데, 그들은 권세 있는 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9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31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탐욕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땅 중심이 아니라 하늘 중심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탐심을 조심하고 탐욕을 경계하십시오.
이제 단순한 조언을 받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이는 경고입니다.
"주의, 조심".
이 책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계명과 조언 중 일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입니다.
주의하세요, 네거티브.
조심하세요, 부정적입니다.
눕지 마세요, 네거티브.
조심하세요, 부정적입니다.
주의하세요, 네거티브.
마태복음 5장 42절에서
너희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너희를 빌리려는 자에게 외면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그곳은 좀과 녹이 슬고 도둑이 침입하여 도적질하는 곳이니라. 그러나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슬지 않고 도둑이 침입하거나 도적질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셨나요?
신중한 답변이 필요한 의도적인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둔 게 있나요?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오신 새 예루살렘에 대해 읽지 않으셨나요?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라간 이야기(고린도후서 12장)를 읽지 않으셨나요?
좋아요, 친구에게 말해 보세요.
거기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나요?
계명이었으니까요.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에 개 사료를 사는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많은 돈을 내놓으셨나요?
모터보트만큼이나 성경 방송과 성경 교육 사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많은 돈을 투자하셨나요?
어렵지 않나요?
온유와 겸손과 낮아짐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갑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10:44)
누가복음 17장 10절에서 예수님은 추종자나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자랑하고, 우리의 헌신을 자랑하고, 우리의 헌신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를 꾸짖을 수 있는 강하고, 강하고 강력하며 담대하게 악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거기에는 온유함이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대할 때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하고 복종합니다.
제가 약 28년 동안 사역하면서 만난 세상에서 가장 고약하고 비열한 기독교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기독교인입니다.
"음, 소-소 형제는 목소리에 사랑이 부족해요. 그는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아요."
그리고 그 중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이나 배운 것과 상반되는 경우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시킬 만큼 온유하지 못합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가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다면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도 멸시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마태복음 18:10)
마태복음 5:24에서
먼저 형제와 화해하세요.
그리고 그가 하루에 일곱 번 당신에게 죄를 범하면. 그리고 하루에 일곱 번이나 주께로 돌아와 회개하거든 너는 그를 용서해야 한다. (누가복음 17:4)
누가복음 6장 37절에서
판단하지 말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하리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베소서 4:32)
이것이 바로 계명입니다.
제안이 아닙니다.
옵션이 없습니다.
이것은 계명입니다. 계명에 순종하시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매우 높은 기준을 세웠습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6:36)
기준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유지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신자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24장 47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 사함을 전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먹여라.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말씀으로 너희는 깨끗해졌다. (요한복음 15:3)
그리고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이 위대한 유형학은 시몬 베드로의 발을 씻기러 오셨을 때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의 세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너희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3:7)
단순히 발을 씻는 것 이상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세족식)을 너희도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낮추고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 구절과 바울 서신에서 교회가 세례의 샘물이 아닌 말씀의 물로 씻김을 받아 거룩해졌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에 관한 계명을 주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에 여러분도 준비하십시오. (마태복음 24:44).
우리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며, 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
명령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준비하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오늘날 일반 교회에서는 크리스천을 위한 순서를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성경을 없애면 권위도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권한이 없어지면 회중을 떠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가르치거나 설교한다고 생각하는 책을 아무 책이나 골라 읽으면 무정부 상태가 됩니다.
교회가 중간에 쪼개진 것이 아니라 수천 개의 조각으로 쪼개진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그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실천하고 홍보하는 우리들이 종종 교회를 분열시킨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최종적인 절대적 표준 권위로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교회를 백 조각으로 쪼개서 권위를 빼앗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혼란의 저자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33)
이제 이것이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준비하세요, 그것은 명령입니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은 환난과 관련하여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환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끝까지 인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세요.
그리스도인은 다가오는 일(삶이나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를 끊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심을 가지고 경주를 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기 위해 달려야 합니다.
바울은 사역의 마지막에 자신이 신자들의 본보기이자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야 할 신자들의 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패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좋은 싸움을 싸웠습니다. 나는 내 과정을 마쳤습니다. 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7-8)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과 관련하여.
사람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 말을 지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4:23).
그는 그들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동기입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점검하기 위한 목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요한복음 14:23)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십시오. (요한복음 14:15)
물론 당연하죠.
구약의 십계명이 요한복음 13~16장에 나오는 두 개의 새 계명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돌판에 쓰여진 율법(고린도후서 3장)은 거듭남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로마서 6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전히 이 법의 도덕적 의무는 그리스도인에게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적어도 주님과의 교제에 관한 한, 로마서 13장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는 의식적인 율법으로서의 안식일이 표징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표징으로서의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표징을 구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표징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1:22).
이스라엘 민족이 표적과 함께 시작되었으므로(출애굽기 4장),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주 하나님임을 알 수 있도록 주신 표적이었습니다.
거듭난 신자가 아닙니다.
느헤미야 9장과 에스겔 20장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우리가 명령과 계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언제 명령이 주어지고 언제 명령이 주어지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을 훔쳐서 내 명령이 아닌데도 내 명령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계명을 불순종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계명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 일부는 음식을 얻고 음식을 섭취하는 것만 큼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화하는 데 부지런히 노력했다면 방금 말한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말씀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것과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부활 후 사도 바울에게 주신 가르침에 따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같은 시간까지 주님의 축복과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