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34부.
2024년 0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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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의 학생과 교사 여러분,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이 강의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교리를 체계화하거나 질서 있게 배열하는 것을 조직신학의 위대한 문제를 다루는 일련의 강의입니다.
물론 신학이라고 하면 하나님에 대한 연구 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거의 잊혀진 학문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비추어 하나님을 조사하고 면밀히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결국 신은 인간이 알아내려는 노력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계시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 자기 계시 없이는 인간은 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칸트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로부터 시작된 현대 과학적 플라톤주의.
인간이 특별 계시를 떠나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신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물론 이것은 1700년대와 1800년대, 1900년대 초에 영국의 이신론자들이 취했던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적인 해석은 이제 학교에서 종교적 도그마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에서 무신론이라는 종교적 도그마를 가르치거나 동시에 학교에서는 교회는 국가와 분리되어야 하며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일부 학교에는 사탄주의와 주술을 다루는 과목이 있습니다.
사탄주의와 주술은 종교이며, 사탄주의와 주술, 진화론과 이신론, 무신론이 어떻게 대학과 고등학교 시스템에서 종교로 가르칠 수 있는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믿는 전천년설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정말 거친 장면이죠?
그래서 우리가 신학을 말할 때 제대로 된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러나 신학 자체는 여러 가지 작은 제목이나 분류로 세분화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보통 신학이라고 합니다.
아들에 대한 연구는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성령 또는 성령 교리에 관한 교훈을 신론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피조물을 다루는 자료는 인류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사와 사탄에 관한 자료는 일반적으로 천사론과 악마론이라고 합니다.
고려해야 할 '올로지'가 두 가지 더 있습니다.
구원과 죄에 대한 연구를 다루는 구원론과 하마르티학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제는 당연히 종말론입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이 단어들은 그리스어 단어 끝에 '로기'가 붙어 있어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일 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실제로 공부하는 것은 기독론의 교리,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역과 본성을 다루는 위대한 성경 교리입니다.
성경의 중심 주제이자 천국의 주요 주제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주제, 그분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주제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 (마태복음 3:17)
이전 레슨에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삼위일체 신학에 대해 토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본성.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 본성.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
그리스도의 인성.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이제 마지막 두 가지 레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오늘 공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사역에 관한 내용으로, 논리적으로 이 시리즈의 공과를 따릅니다.
성경에서 그가 알파 드라코니스를 넘어 망원경과 과학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제3의 하늘로 영광스럽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겸손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이 있는 자와 함께 높고 거룩한 곳에 영원히 거하시느니라.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사역을 하게 됩니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론에 속하는 과목으로,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제사장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다룹니다.
이제 성경을 분별력 있게 공부하는 학생들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사제, 왕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성서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세 가지 직분을 모두 수행하시는 분입니다.
물론 이 사람이 누구일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데이비드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일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지자라고 불릴 정도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전을 지을 장소와 제사를 드릴 장소를 모리아 산, 즉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표시한 사람은 다윗이 유일합니다.
이 자료는 역대하와 사무엘상 말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윗이 선지자 사제이자 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 주님이시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사역을 공부합니다.
선지자로서의 그의 삶을 다룬 자료를 다루었습니다.
신명기 18장 18절에 따르면 그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나타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세요?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입니다. (마태복음 21:11)
산헤드린에서 큰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검색하고 보세요.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요한복음 7:52)
그러나 그의 적들조차도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은 요한복음 4장 1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선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고난 받는 선지자, 고난 받는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내쫓은 사람들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너희에게 보내진 선지자들을 돌로 치는구나. (누가복음 13:34)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선지자로서의 첫 번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 그분의 사역의 두 번째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승천 후에도 하늘에서 계속됩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사역입니다.
그래서 오늘 수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오늘날 그리스도는 한가하신가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자들을 위한 저택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중보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하는 중보자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저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말했을 것입니다. 널 위한 자리를 준비하러 간다.
새 예루살렘은 준비된 백성을 위한 준비된 장소입니다.
예약된 모텔 객실 이용 시.
숙박시설은 사전 예약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이먼 베드로는 그렇게 말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히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 유산.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예비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4)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속받은 자들을 위한 영광의 장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사역 외에도 중보기도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며, 그들을 위해 항상 살아서 중보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4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형상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 그 자체로,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 나타나시기 위해.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이러한 문제 중 로마서 8장 26절에 나오는 구절을 읽어보세요.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성령의 신음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라갔을 때 그가 들은 말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불법적인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는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죄 많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중보하는 중보자입니다.
우리는 중재자가 한 명이지 중재자가 아니라고 읽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한 분의 중보자,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2:5)
알겠습니다.
중개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 사람, 즉 인간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레위기 4장 16절에서 제사장은 피의 제물 또는 속죄 제물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당시 욥의 소망은 중재자, 즉 일용직 노동자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9:3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우리 둘 모두에게 손을 얹을 수 있는 판사도 없습니다.
욥이 원했던 것은 법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 출석하여 판사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진술할 변호인.
그는 판사가 법정에서 자신을 대리할 사람을 선임한 다음, 상대방에게 손을 얹고 중재자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길 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한 분의 중보자, 즉 인간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한 사람을 택하신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매우 분명해집니다.
애초에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과 하나님께 동시에 안수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샤브샤브가 당신에게 손을 댈 수 있다는 건 인정할게요.
마리아나 요셉이 당신에게 손을 얹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인정합니다.
세례 요한이나 성 프란시스, 카가와, 간디 또는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손을 얹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를 경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24)
우리가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올라갈 사다리는 사다리의 바닥이나 바닥이 타락한 인류의 진흙탕에 무릎 깊이 박혀 있어야 합니다.
부엽토의 뿌연 먼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정상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셋째 하늘에 닿아야 합니다.
사람이 설 수 없는 곳, 심지어 하나님의 얼굴 빛조차도.
이 자격을 갖춘 이상적인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이 육신으로 현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의 아들.
그는 사다리 꼭대기에 오를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이 땅의 인간 부모에게서 태어난 여성.
그는 인간을 대신하여 사다리의 맨 아래를 대신하고 대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진리 곧 생명의 길이라는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교육받은 사람이 참을 수 없는 극단적인 독단주의와 교훈적인 독단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극단적인 광신자는 자기애에 빠진 타락 속에서 자신의 배움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지성을 넓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도로 교육받은 사람의 특징은 단순히 자신이 더 많은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성경의 사실이 사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저와는 다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4:6)
남자 없이, 절대 독점.
남자도, 당신도, 당신의 어머니도.
남자, 당신이나 당신의 사제는 안 됩니다.
남자, 당신 또는 당신의 시세이터.
여러분이나 교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수님이나 교수님을 가르친 사람은 없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습니다.
이전 세션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악마에 사로잡힌 이기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는 신이어야 했습니다.
육신을 입고 나타난 신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 역사상 가장 신경증적인 정신병적 이기주의자였을 테니까요.
어떤 사람이 혼자서는 아무도 신에게 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상상해 보세요.
잠시만 생각해 보세요.
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베들레헴과 갈보리에 대해 자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현재 우리를 옹호해 주시는 하나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는 현재 우리의 중보자로서 중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날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담대하게 그곳에 가서 자비를 구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자,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이 땅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 직업의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속죄 사역은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우리의 구원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추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작은 오래된 물 세례, 작은 오래된 작품.
마가복음 16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도행전 2장 38절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감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6장과 히브리서 10장을 설명할 수 없으니 작은 성찬을 놓아두세요.
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의의 사역자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끝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므로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공언하는 이단들은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하나님과의 영원한 안전의 인봉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타락한 마음 속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더할 수 있다고 상상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여기에 추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는 십자가에서 의롭게 처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는 죄 때문에 죽지 않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9:24~28과 히브리서 10:8~10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새롭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반복하거나 그리스도의 희생을 계속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히브리서 10장 8절부터 12절까지를 주의 깊게 읽고 한 번의 제사는 영원한 죄를 위한 제사임을 알아보세요.
위에 말씀하셨을 때 너희는 죄를 위하여 제사와 제물과 번제와 제물을 드리지 아니하고 또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율법에 의해 드려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보십시오.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첫 번째를 제하시고 두 번째를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하게 되었느니라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섬기며 같은 제사를 여러 번 드리나 결코 죄를 사하지 못하나 이 사람은. 그는 죄를 위하여 영원히 한 번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절대 반복되지 않고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이 아니라 영광의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이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1절에 따르면 그분은 사람 가운데서 데려가셨다고 합니다.
그는 안수를 받거나 임명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3장 2절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는 신실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그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히브리서 5장 4절에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히브리서 2장 17절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섬겼는데, 이는 백성의 죄를 위하여 화목하게 하는 충실한 대제사장이 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죄를 위해 선물과 희생을 바쳤습니다.
히브리서 5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선물과 희생은 그분 자신이며, 이 제물은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드려졌습니다. (히브리서 10:8-1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간격을 두고 반복되거나 계속되어야 한다는 가르침보다 더 신을 모욕하거나 신을 무시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을 때
완료되었습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아는 사람과 구원받은 것을 모르는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가인과 같이 포도를 바치고 피인 척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인이 표식을 받기 전을 기억하시나요?
그는 땅의 열매를 제물로 바치고 자신이 바친 포도가 진짜 피인 것처럼 가장했습니다.
그의 동생 아벨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진짜 양의 피, 진짜 양의 피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포도를 변질시켜 피가 되게 하려고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차단 신호를 받았습니다.
현대식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이 나갔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위선자였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을 있는 척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론처럼 백성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보리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바치셨습니다.
아론처럼 그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 나타났습니다.
아론처럼 그는 백성들을 축복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남자 아론은 죽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기 위해 살아계십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또 다른 유명한 제사장 직분 패턴을 따랐습니다.
끝이 없는 제사장, 멜기세덱 신권의 본을 따르십시오. (히브리서 5:6).
그러므로 교회를 시작하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하려는 불경스러운 외설적 인 저속한 사람들.
그들은 신약 성경 전체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과달라하라나 멕시코시티, 샌안토니오, 로마, 뉴욕,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나체스, 볼티모어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마친 그는 다시는 속일 필요가 없도록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 (고린도전서 11:24)
이렇게 성만찬을 기억하고 성찬을 행할 때,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고 나의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 성만찬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 죽음을 되풀이하지 마세요.
내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내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어가는 것이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내 죽음을 보여주세요.
이제 고린도전서 10장과 11장에 나오는 이 구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세요.
고린도전서 10장과 11장, 특히 10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즉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발효주가 아니라 포도나무의 열매를 먹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지, 그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재림이 아니라 재림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성찬을 취하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 그는 제사장으로서 대제사장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 자리에 앉습니다.
그의 중보자, 그의 중재자는 하나입니다.
300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의 중보자, 히아 중보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이지, 할로윈 코스튬을 입고 지상을 뛰어다니며 자신이 아닌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에서 단번에, 그리고 마침내 영원히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8)
예루살렘에서 그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지고 문도 없이 죽으셨고, 그의 희생은 자발적이었습니다.
대체.
피가 묻지 않습니다.
허용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입니다.
한 남자가 그 장면을 재연하려고 할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19세기 전에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여러분을 허공에 매달리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6절부터 12절까지를 주의 깊게 읽어 보세요.
이 세션에서 우리가 의견을 제시하거나 교단의 신학적 해석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성경을 꺼내서 읽어보세요.
히브리서 10장 6절부터 12절까지.
죄를 위한 번제와 희생을 기뻐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러자 내가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책의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말했을 때 위에. 죄를 위한 희생과 제물과 번제와 소제는 너희가 기뻐하지도 않았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율법에 의해 제공됩니다.
그런 다음 그는 말했다. 보시오, 나는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그는 첫 번째를 없애고 두 번째를 세우려고합니다.
그 뜻에 따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바쳐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제사장은 매일 같은 제사를 드리며 사역을 하는데, 이는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죄를 위해 영원히 한 번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에게 화를 내고 화를 내며 표현대로 불안해하고 긴장하기 전에요.
또는 전혀 모르는 일로 인해 모든 것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넘어가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읽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어 성경이든 독일어 성경이든 프랑스어 성경이든 러시아어 성경이든 상관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 6절부터 12절까지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한 마지막 제사를 단번에 이루시고 마침내 영원히 끝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 반복되거나 계속되거나 재연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읽어보세요.
히브리서 7장 27절에 따르면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매일 필요하지 않은 사람. 대제사장으로서 희생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위해, 그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이를 위해 그는 한 번 자신을 바쳤습니다.
히브리서 10장 8절부터 12절까지에 따르면 이 일은 결코 다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자유의지에 따른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죽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10절까지를 보세요.
대신 죽었으니까요.
히브리서 7:24-28.
하지만 이 남자.
그는 영원히 계속되고 변하지 않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또한 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제사장이 바로 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고 더럽혀지지 않으신 분입니다.
죄인들과 분리되어 하늘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매일 (대제사장처럼) 희생을 바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먼저는 자신의 죄를 위해, 그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이를 위해 그는 단 한 번 자신을 바쳤습니다.
율법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맹세의 말씀은 율법 이후였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영원히 봉헌하신 분으로 만듭니다.
흠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따르면 완전하고 죄 없는 어린양입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하물며 너희 양심을 죽은 행위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그것은 피를 흘리지 않은 희생이 아니라 피를 흘린 희생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따르면 그것은 자신의 피, 즉 신성한 피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조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받아들일 만한 희생이었고 아버지의 공의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는 아벨의 희생을 받아들인 것과 똑같이 그 희생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세요.
히브리서 13장 20~21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제 평화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영원한 언약의 보혈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십니다.
그는 모든 선한 일에서 당신을 온전케 하셔서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당신 안에서 그분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에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 희생이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6절부터 12절까지에 따르면 갈보리 사건을 재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으로는 자신을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릅니다.
뒤집기 아닌가요?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 즉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작업 중 네 가지 분야만 논의했고, 아직 세 가지가 남았습니다.
다음 세션에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옹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즉 오늘 여러분의 중보자가 되기로 자원하시거나 되기로 작정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죄인인 여러분을 위해 중보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소망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세요.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