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42부.
2024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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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좋은 하루 되세요.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 공부해 왔습니다.
조직신학 및 교리신학에서는 "영"을 뜻하는 그리스어 "뉴마토스"의 이름을 따서 성령론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수업에서 우리는 성령이 인격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처럼 인간의 몸을 소유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입니다.
그리고 사람일 뿐만 아니라 신성한 분이십니다.
성령은 모든 면에서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저희의 연구, 특히 아버지 하나님과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를 공부한 첫 번째 신학 시리즈에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고 분명히 가르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수많은 용례를 통해 완벽하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버지 예수.
그리고 성령 예수.
그들은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종류의 어떤 것도, 그런 종류의 어떤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른 분들에게 적용 할 수없는 성격과 관련된 뚜렷한 성격과 특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각 위격은 다른 위격과 공유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성된 한 분이신 하나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몸과 영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같은 삼위일체 존재입니다.
자,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때.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는 그것들은 그에게는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하지만 태양은 이러한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해 줍니다.
태양은 하나의 태양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종류의 광선이 있습니다.
만약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햇빛이 아닐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말라기 4절과 시편 19편에 따르면 태양은 그리스도의 한 유형입니다.
따라서 태양에는 볼 수는 있지만 느낄 수 없는 광선이 있는데, 이는 아들의 일종입니다.
성령의 일종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광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보거나 느낄 수 없는 광선, 즉 아버지의 일종인 광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이지만 몸과 영혼과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영혼이 아닙니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의 정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정신은 육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한 사람입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이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난 주와 그 전 주 세션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경이 등장하는 문맥에서 성경의 점수와 점수를 제시하여 성령이 인격체임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육체와 영혼, 영을 가진 사람처럼 하나님의 일부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확실히 그들이 세 개의 별개의 신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성령의 신성과 관련하여 성령은 신성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신성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네 번째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는 구별되지만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는 물론 삼위일체의 신비가 포함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해서는 웹 신학 세미나의 첫 여섯 강의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 시간까지 함께 해주셨다면 이 시리즈의 42번째 강의에 오신 것입니다.
거의 1년에 걸친 세션을 완료하고 800개 이상의 성경 구절을 다루었습니다.
사실, 성경 구절은 천 구절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성령의 신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것을 발견합니다.
성령은 신성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성한 존재입니다.
그는 영원합니다.
이는 삼위일체 외에는 누구에게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14.
영원한 성령을 통해 흠 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영원한 성령.
이것은 악마의 영이 아닙니다.
악마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이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이 아닙니다.
이들은 유한한 영혼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영을 받아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다윗은 시편 139:7-8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영혼으로부터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주님의 면전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갈 때에도 주님이 거기 계십니다. 내가 지옥에 침상을 만들면 주님이 거기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면전에서 도망치려 했던 불쌍한 늙은 요나와는 달리.
다윗은 처음에 자신이 지옥에 잠을 자더라도 주님의 영은 여전히 그곳에서 권능의 진노와 심판으로 나타나실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성령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것은 당신이나 악마 또는 당신이 살면서 만난 어떤 동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신성한 존재입니다.
성령은 전능하십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성령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물 위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욥기 26장 13절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습니다.
그의 정신으로 그는 하늘을 장식했습니다.
은하 성운 성단 성단, 백색왜성, 황색왜성, 청색왜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성한 사람의 작품입니다.
악마나 반신 또는 악마가 이런 것들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주님은 예레미야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만들지 않은 신들은 땅과 이 하늘 아래에서 멸망할 것이다. (예레미야 10:11)
게다가 성령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11절을 읽어보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감찰하시니까요.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아시느니라.
삼위일체에 대한 첫 두 강의를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전능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에 관한 사실입니다.
성령은 영원합니다.
그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전지전능하고 모든 힘을 가졌습니다.
그는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보혜사는 성령이십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12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첫 번째 여섯 가지 강의를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신학을 제대로 논의할 때는 신에 대한 학문이었죠.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고 편재하며 영원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성령은 진리입니다.
요한일서 5:6.
성령은 진리입니다.
느헤미야 9장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당신은 또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당신의 선한 정신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신성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성은 오직 신에게만 귀속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상의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입니다.
신성을 발휘하지 않는 한 그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그의 출현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하늘의 천사들도. 오직 내 아버지 외에는. (마태복음 24:36)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가 예수님이고 성령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불경스럽습니다.
내 영혼은 내 정신이 아니지만, 둘 다 나 자신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으로서 그렇습니다.
독생자이자 영원하신 아버지이시며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것처럼,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신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피를 흘리고 목마르고 굶주리며 인간과 똑같이 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 성령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은 생명 재생의 예언을 주시고 다가올 의와 심판에 대해 사람들을 책망하는 창조 구원에서 활동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창작 중입니다.
욥기 33장 4절에서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저를 만드셨습니다.
시편 104편 30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영혼을 내보내면 그들이 창조됩니다.
구원에서.
고린도전서 6장 11절을 읽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30절과 1장 13절에 성령의 인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을 슬퍼하지 말라 그로 말미암아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너희가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또한 성령은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이 살아나는 것이지 육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물론 성령은 거듭남의 저자이십니다.
육신에서 난 것은 육신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태어난 것은 영입니다. (요한복음 3:6)
첫 번째 육신으로 태어날 때 여러분은 육신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날 때까지.
중생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예언은 옛날에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습니다.
예언은 옛날에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말한 것입니다.
그때 성령은 영감과 예언을 통해 활동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은 오늘날에도 세상에 계셔서 의로운 사람들의 죄와 다가올 심판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특히 요한복음 16장 11절에 나오는 구절을 읽어보세요. 이 시대에 성령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운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아버지께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심판을 받았고 마귀는 그들의 아버지이자 신이기 때문에 세상에 심판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성령의 역사는 세 가지입니다.
성령이 사람에게 가장 먼저 확신시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거부하는 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편협하고 편협한 편견으로 인해 성경 설교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진실은 오늘날 죽은 사람을 따르는 더럽고 신성 모독적인 썩은 죄를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은하계를 창조하신 분, 성령님.
그리고 그의 임무는 오직 한 사람만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의롭고 당신은 불의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따르는 사람들은 불의한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이나 무함마드처럼 아직 무덤 속에 있는 인물을 팔로우하고 있다면 그 뼈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이는 제 의견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께 맡기신 공식적인 사역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11절).
마지막으로
성령은 오늘날 죄인에게 아버지 마귀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 심판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세상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한복음 8:44)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그는 이 세상의 신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8절까지에 이 세상의 모든 왕국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독사 세대 여러분.
악마에 대한 또 다른 언급입니다.
지옥의 저주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설교자가 강단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할 때, 여러분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설교자가 길모퉁이에 서 있거나 전도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거나 길모퉁이에서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하메드도, 부처도, 로시크루스도, 도교도, 공명교도, 힌두교도, 교황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신격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원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의견이나 판단이 아닙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3장 36절의 분명한 말씀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성경은 성령에 대해 매우 강력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6장 8~10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도행전 28장 25절에서 이 구절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지자 에사야가 성령의 말씀을 잘 전했습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했을 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성령으로 식별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아가바가 예언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구약성서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오랜 공식입니다.
남자가 말을 할 때 200개 이상의 사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1장 11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신성한 존재입니다.
사도행전 5장 3절부터 5절까지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말했습니다.
왜 사탄이 성령을 속이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 채웠나요?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신성한 커플을 주목하세요.
마태복음 28장 19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성령의 이름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성령의 이름은 진리의 영입니다.
주님의 영.
성령과 보혜사.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느님입니다.
주님, 그리고 주 하나님.
여호와, 그리고 야.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지만 그는 이름에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 이름이에요?"
아버지의 이름은 주님입니다.
아들의 이름은 주님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름은 주님입니다.
사도행전 28장 25-27절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 고린도후서 13:14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친교.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시리라.
여기에는 성부 성자와 성령이 있습니다. 보세요.
요한복음 14장 16절.
고린도후서 13장 14절.
마태복음 28장 19절.
성령은 주님이십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주님을 영접할 수 없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세션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여 그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학생과 교사를 위한 것입니다.
단어 그대로, 단어가 등장하는 문맥에서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구별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아버지의 영 또는 아들의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3장 21~22절에 나오는 예수님 세례 장면을 주목하세요.
세 가지 증거는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나는 너로 인해 기뻐한다.
이때 아들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육신의 모습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세 가지 개별적이고 뚜렷한 특징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하지 않고 속기 쉬운, 배우지 않고 불안정한 크리스천에게 두 가지 큰 함정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큰 함정은 정통으로 가는 길의 양쪽에 파헤쳐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리우스 이단입니다.
두 신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를 아리우스 이단이라고 합니다.
러셀 목사와 러더포드 판사(여호와의 증인)가 가르쳤으며, 요한복음 1장 1절의 「신세계 역」(여호와의 증인이 사용하는 버전)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든 곳이 적혀 있습니다.
"말씀은 신이었다".
따라서 두 개의 신이 있고 성령은 없습니다.
아니면 정통을 고수할 수도 있습니다.
세 명의 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신 것처럼 성령도 신이시니까요.
따라서 두 가지 이상의 신을 가르치는 기독교의 왼쪽 영역에 첫 번째 함정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두 신은 별개의 신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제3의 신이거나 영향력일 뿐입니다.
그런 다음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신격에는 구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아들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성령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10장과 사도행전 2장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유대인 세례식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죄 사함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유대인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 이방인 세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사도행전 2장을 사도행전 10장과 일치시키기 위해 사도행전 10장의 마지막 몇 구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사도행전 10장의 세례가 사도행전 2장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를 사적인 해석이라고 합니다.
법정에서는 이를 횡령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 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법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단어가 텍스트에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주님의 이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니이다.
사도행전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장로로 세우려는 사람의 통찰력이 현저히 부족하고 진지한 성경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이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0장의 세례는 사도행전 2장의 세례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주목하세요.
아들은 기도하고 있고, 아버지는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주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아버지께서 거하시러 오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하지만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읽습니다.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육신으로 거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9)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 안에 셋이 있고 셋 안에 하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사람은 저를 위해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 아들은 아버지 우편에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지만 성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성자께서 받아 교회에 주신 것이지, 성자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시며, 서로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 세 개의 분리된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몸과 영혼과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보세요.
특정 신성한 속성을 공유하지만 각자의 고유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신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지난 세 번의 세션에서 제가 제공한 마지막 100개의 참고 자료를 꼼꼼히 확인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약 100개의 성경 구절이 반복해서 표시됩니다.
첫째, 성령은 인격체입니다.
둘째, 그는 신격의 일원입니다.
셋째, 그는 온전히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신입니다.
하지만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아들과 아버지와 공유하지 않고 그분만의 고유한 업적과 속성 및 칭호를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타난 이 절대적인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기본 수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을 구성합니다.
하나의 주님.
그러나 그 신이자 주님은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몸(아들)으로서.
영(성령)으로서.
그리고 영혼(아버지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몸과 함께 영혼과 영도 함께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그의 영혼은 다시 태어납니다.
그의 영혼은 몸에서 분리되고,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할례의 능력으로 내면에서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성령의 신성과 이름을 다룬 성령에 관한 세 번째 강의를 마칩니다.
이 강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이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성령의 이름과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 어떻게 종속되는지 설명합니다.
다음 두 강의에서는 다음 세션에 이어서 그 내용을 다룹니다.
다음 두 과(44-45과)에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되살리고 새롭게 해줄 복된 진리가 담긴 복된 교훈을 여러분과 함께한다면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