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46부.
2024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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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생과 교사 여러분, 다시 한 번 좋은 아침입니다.
또는 이 방송을 수신하는 지역에 따라 좋은 오후입니다.
이번 주에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관한 공과를 통해 웹 신학 세미나가 여러분을 교화하고 권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지난 공과에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공부했습니다.
세상과 신자의 삶 모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지한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성경을 믿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실한 학생.
성령과 신자의 관계를 다루는 약 300 구절.
성령의 역사.
성령의 이름.
성령의 신성. 그리고 세상 안에서 성령의 역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속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물론 성경을 믿는다고 해서 속을 수는 없습니다.
신이 말씀하신 것.
신이 말씀하신 대로.
표시되는 컨텍스트에서.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속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죄'라는 단어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사용하는지, '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거역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을 거역할 수 있는 다른 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다른 죄들을 계속해서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저질렀다고 생각하거나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동안.
성령에 관한 이 단원에서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해 공부합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성령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분께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그도 분명히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 중 일부는 아마도 신자만 범할 수 있는 죄일 것입니다.
기타 불신자.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절대적인 것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소위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만 저질러진 일이며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저질러진 적이 없습니다.
우선, 성령 모독죄가 있습니다.
성령 모독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중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 나오는 십자가 처형 전 장면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훼방하는 자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저주의 위험에 처하리라."
성경에서 하이퍼 카리스마가 망가지는 방식은 단순히 문장을 끝내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28절과 29절, 30절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9절의 마지막 문장을 끊어버리면 됩니다.
우리는 하이퍼 카리스마를 조롱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는 말도 안 되는 사적인 해석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사람들과 많은 거래를 해왔습니다.
제 말은 바로 그 아이디어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이 철없는 버릇없는 녀석들.
그들이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거부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3장 30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했으니까요. 그는 부정한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러운 영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 우리가 할 일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마귀의 일을 주님께 돌리거나 주님의 일을 마귀에게 돌리면".
말도 안 돼요.
Why.
구약성경에서 사탄이 다윗을 움직여 이스라엘의 수를 세도록 한 대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록에 따르면 주님께서 그를 감동시켜 그렇게 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욥에게 이유 없이 감동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제 악마가 한 일을 다룬 1장을 읽어보세요.
주님과 마귀는 종종 너무 가까이서 함께 걷거나 일하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새로운 스코필드 참고 성경은 요엘서 2장에서 주님의 군대를 마귀의 군대라고 부릅니다.
스코필드가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뉴 스코필드의 편집위원회가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가복음 3장 30절에 따르면 용서받지 못할 죄는 말(말하기)입니다.
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현재 시제)는 부정한 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성령에 따르면 그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의 말씀에 따라.
성령을 거역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예수)에게는 더러운 영이 있다."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며, 여러분의 의견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누가 대화를 방해하는 건가요?
그러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이 회의는 악마 같았어요."
"이 치유 라인은 악마, 더러운 영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성령 모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성령 모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러운 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부정한 영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기독교 부흥은 아마 한 번쯤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정한 영혼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제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마가복음 3장이나 마태복음 12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2장과 마가복음 3장 뒤에 숨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비판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다고 겁을 주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세요.
찰스 G. 피니는 부흥을 불필요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부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수천 명의 침례교인과 감리교인이 다른 교회를 찾아 교회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찰스 G. 피니가 부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영혼의 능력을 구원하는 성경의 부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정적 경험에 기반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계산된 것들을 게시함으로써 성령께서 슬퍼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계산된 것들을 게시함으로써 성령께서 얼마나 슬퍼하실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높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더 높임을 받은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특정 추론 범위를 넘어서는 진실을 즐기고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진실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진실입니다.
현재 많은 기독교인들이 건전한 성경적 교리를 거부하는 것은 매우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평균적인 기독교인은 건전한 교리를 듣지 않고 귀를 닫은 배교자이며, 교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거부했고, 디모데후서에서도 이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이제 시편 138편 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더 높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보다 더 높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성경)입니다.
시편 138편 2절.
현대의 배교자 또는 배신자를 발견하는 방법은 시편 138편 2절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성경을 바로잡는 현대의 배교자는 보통 기독교 대학이나 기독교 대학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배교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기본에 있다고 합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집결 지점은 기본이 추출된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입니다.
현대의 배교자는 1970년대에 큰 이슈가 근본적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권한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의 세계, 세속적, 종교적 세계에서의 모든 싸움.
그리고 가정과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일까요?
그래서 대형 교회를 세우는 대부분의 목회자는 독재자입니다.
독재자를 회중에서 몰아내려면 독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싸움은 권위에 대한 싸움입니다.
기본은 사소한 문제입니다.
현대의 소위 기독교인들은 모두 신앙의 근본을 부정합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1:3.
누가복음 2:33.
그리고 누가복음 24장 51절과 52절.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고 그들의 거부에 대한 알리바이도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신앙의 근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공격해도 괜찮습니다.
이를 배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시대와 우리 시대의 근본주의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기독교 교육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인 이유입니다.
시편 138:2.
성령이 말씀하신 사실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높임을 받습니다.
따라서 피니는 하나님의 사역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계산된 것들을 게시함으로써 성령께서 슬퍼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도 몰랐던 엄청난 예언을 했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
성령은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9절에서 우리는 성도가 받는 환난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가 합당하다고 여겨질 것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발아래 밟고 언약의 피를 세었습니다. 그는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은혜의 영을 거스르고 부정한 일을 행했습니까?
이사야 63장 9절부터 10절까지를 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여 그분의 성령을 괴롭혔습니다.
이제 이사야 63장에 나오는 부분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칙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아마도 정신적으로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슬퍼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방해합니다.
성령은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순수한 사람보다 더 거룩하고 순수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발을 디딘 가장 순수한 고귀한 문화인은 그 어느 때보다 순수했습니다.
그리고 결코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결코 겸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만큼 민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에는 평화롭습니다.
제임스에 따르면
모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다음 레슨에서는 그가 똑같이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소멸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경박함에 슬퍼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된 영향력입니다.
잃어버린 인간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입맞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그분(성령)이 직접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말씀의 무오성에 대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 곳은 오직 성경의 기록된 말씀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집결의 지점을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집결의 지점입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집결점으로 삼는 것은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아니었다면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 대학과 신학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집결지로 삼는 이유는 달로 가는 로켓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해가 많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신 성령님도 짜증이 나실 수 있습니다.
모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쓰신 성령께서 책을 쓰시고 책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시고 책을 보존하신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모든 이름 위에 높였나이다. (시편 138:2)
그러므로 그 성경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모든 움직임은 배도를 향해 출발한 사람의 움직임입니다.
그가 배교자는 아닐지라도.
그리고 사전에서 정의하는 배교자.
서 있는 자세에서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고 계속 그 입장을 공언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 학교 교직원의 90%가 거짓으로 비난받지 않고 '배교자'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단의 대제사장들은 끊임없이 기독교인의 관심을 최종 권위인 성경에서 멀어지게 하고 이단을 권위자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공인된 장학금" 또는 "자격을 갖춘 권위자"에 대한 숭배.
이것은 마귀의 역사이며 성령의 역사에 반하는 것입니다.
짜증의 법칙은 반항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학자들의 단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고 스스로를 최종 권위자로 인정받는 학문의 숭배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을 믿는 모든 사람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 자체가 교육 감사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뇌를 숭배합니다.
때때로 성령은 내면의 추악함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발견에 감사하기는커녕 교만한 마음으로 반항합니다.
우리는 필요한 고백을 거부합니다.
성령께서 한 기독교 학자에게 그가 배교하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것이라고 계시하셨을 때.
그는 반항하고 고해성사를 거부하며 배교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할 선생님은 한 단계 더 내려갑니다.
그 자리를 대신할 선생님은 한 단계 더 내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50년 이내에 모든 주요 기독교 대학이 배교한 이유입니다.
50년이 한계입니다.
20년 만에 배교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삶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주어진 자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불평.
그것은 의로운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성령을 괴롭힙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징계가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반복되는 경고 후
축복이 배가되고 빛과 지식이 풍성해집니다.
악을 지속하고 여전히 성령을 무시하는 것.
성령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괴롭히지 마세요.
고집스러운 의지를 멈추고 성령께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십니다.
성경의 영감.
성경의 보존자.
성경의 아노이너.
성경의 설교자.
그리고 성경의 계시자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정받는 학문의 숭배는 결코 책을 쓴 성령과 같은 리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의심스러우면 공인된 권위자를 버리고 책을 따르세요.
성경의 말씀에 따르세요.
말 그대로, 그 말이 사용되는 맥락에서 말입니다.
이것으로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한 첫 번째 간단한 강의를 마칩니다.
우리는 이 단원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이 땅에서 저지른 성령 모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함으로써 성령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를 거부함으로써.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성령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스스로 권위를 세움으로써 어떻게 성령을 대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단원에서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로서의 불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로서 하나님을 유혹하는 인간의 불성실함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간의 편견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경박함이나 인간의 느슨함 또는 부도덕함으로 인해 슬퍼하시는 성령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성령 수업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물론 아직 공압학에 대한 연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공압학 수업을 네 번 이상 더 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의 영으로 충만한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세션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