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49부.
2024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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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와 지난 몇 주 동안의 강의는 성령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성령론과 조직신학의 주제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세션에서는 성령 충만한 신자의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 구절들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모든 사람에게 성령 충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 회원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집사의 자격 중 하나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 38절을 성경에서 읽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인 개종자들은 죄 사함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대의 소위 카리스마 운동은 성경이 아닌 주로 경험에 근거한 운동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인간의 경험이 영원한 말씀의 교리적인 내용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하는 인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운동입니다.
주여, 주님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정착되었습니다. (시편 119:89)
데이비드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마태복음 24:35)
주님의 말씀을 모든 이름 위에 높였습니다. (시편 138:2)
소위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경험이 신의 이름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더 높아진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시편 138편, 2절.
당신의 이름보다 당신의 말씀을 더 높이셨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그 책보다 우선시한다면 그 사람은 그 책을 쓰고 그 책을 보존한 사람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령님 자신이십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1:20)
그러므로 그 책을 쓰고 그 책에 영감을 주고 그 책을 보존한 사람은 그 책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높임을 받는다는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경험이나 그의 갱신 또는 형제들에 대한 에큐메니칼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틀렸어요.
적그리스도 교회가 이끄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유엔은 적그리스도를 형상화합니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10개의 연합 왕국.
근본주의의 좌파.
그것이 바로 영적 쇄신을 더 깊이 경험하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기독교인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아닌 다른 하나의 표제 아래 통합하려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 있는 한, 적그리스도 교회에서 그들을 삼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게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하거나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판단하세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노리는 사악한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신자들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우리의 기독교적 행보는 두 가지입니다.
신을 향해, 그리고 동료 인간을 향해.
세상은 모든 크리스천이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성전의 맹인 또는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언가를 받기를 기대하며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나니.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너희에게 주노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은 당신을 광신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을 위선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세상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에베소서 5장 18절의 성령 충만하라는 계명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사람들은 외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청중은 외국어를 이해하고 모든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이해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참석자들은 이해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문맥상 이해한 내용입니다.
성령 충만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교리의 진보적인 책인 사도행전에는 때때로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나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초기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방인에게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이방인에게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나오는 성령의 첫 번째 임재는 유대인과 유대인 개종자에게만 일어났습니다.
특히 14장 22절, 37절, 36절을 읽어보세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모든 사람, 설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정통입니다.
돼지고기 기권.
안식일 예배.
사원 참석.
할례받은 유대인.
또는 정통 구약 유대교로 개종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 개종자들에게 처음 성령이 임한 것은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나오는 성령을 받는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성령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갈라디아서 4장 6절).
왜냐하면 말 그대로
여러분은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영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보편적 부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집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영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보내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을 원하는 사람은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우리는 읽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게 하라.
이사야 44장 3절과 이사야 55장에서도 믿음으로 와서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을 참조하세요.
오순절 이후 성령은 믿음으로 주어졌습니다.
성령은 믿음으로 여러분 안에 오셨습니다(갈라디아서 3:13-14).
성령의 약속은 이방인들에게 물세례가 아닌 믿음으로 주어졌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묻고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성령 충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구원받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비결은 우리의 의지와 소유, 삶의 모든 측면을 성령의 통제에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달라고 간구하세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을 구할 때, 우리는 우리 삶에서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게 됩니다.
폴의 말처럼.
나는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형성될 때까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수고합니다. (갈라디아서 4:19)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보면 그림은 매우 간단합니다.
여기 유리병이나 과일 통조림 병이 있습니다.
과일 통조림용 병입니다.
수도꼭지 아래에 놓습니다.
물을 켭니다.
물 한 스푼을 넣습니다.
그리고 봉인하세요.
모든 물은 저 병에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병을 가열하면 물이 수증기로 변해 병이 밀봉된 상태로 채워집니다.
더 이상 넣을 필요는 없지만 성령이 내 안에 있다고 해서 충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봉인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셨고,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뚜껑을 덮고 할머니가 열 수 없도록 단단히 조여 놓으셨어요.
하지만 아직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저 안에 있는 물이 생명수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것은 그릇을 채우고 그 사람의 내부에서 생수의 강이 나오게 합니다.
그러므로이 모든 시도는 하나님이 손을 뻗어 당신의 육체에 닿아달라고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육체에 그분의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는 밀레니엄이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으면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릇이 그분께 굴복하지 않으면 그분은 반드시 당신을 채우지 않으십니다.
이제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성령 충만의 첫 번째 결과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1장 8절에 주목하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하고 증거하는 그의 능력.
성령 충만한 증인의 첫 번째 특징은 입을 열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리라는 약속과 함께.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제 증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경험을 목격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발견하면.
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증언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이 길모퉁이에 서서 구원의 계획을 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성령의 능력은 한 사람이 의회에서 일어나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성령의 능력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또는 사탄주의자와 맞설 수 있도록 사람을 이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천국에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을 찾는 척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얼굴에 대고 당신의 물건을 집어넣고 그를 꾸짖을 수 없다면 말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4장과 5장에서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레미야 23장에서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경고한 것처럼 말입니다.
열왕기상 28장에 나오는 미카이아의 말처럼요.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셨나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2-24에 유의하세요.
주님께 영광이 쌓일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요한복음 16:14 및 요한복음 15:1-5).
여러분이 많은 열매를 맺을 때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령 충만한 삶의 결과로 그리스도인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즐길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는 천국을 누릴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즐길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사랑을 가질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삼킬 것입니다.
밤낮으로 명상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욥의 말처럼 그는 필요한 음식보다 더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다윗의 말처럼 그는 큰 전리품을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할 것입니다.
성령은 지성의 정서와 양심을 일깨워 줍니다.
개성을 빠르게 표현합니다.
구원받은 후 죄인을 거듭나게 하는 것은 성령입니다.
그는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는 얼굴을 바꿉니다.
그는 운명을 바꿉니다.
그는 그를 고쳐서 서비스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게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비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뢰를 갖도록 인도하는 것은 성령입니다.
이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우선
우리는 저수지가 아니라 수로입니다.
우리는 넘쳐야 합니다.
축복이 쏟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축복의 성령이 우리 몸에 내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속의 날, 즉 유업의 날까지 인봉합니다.
그렇긴 하지만요.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성령의 성전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시키는 것이 우리 안에서 넘쳐나야 합니다.
먼저 전환하세요.
그런 다음 채우기.
그런 다음 넘쳐납니다.
성경에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네 구절에 걸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 주목해 보세요.
우선 성령은 넘치는 샘물에 비유됩니다(요한복음 4:14).
그리고 넘쳐나는 샘물(요한복음 7:37-39).
그러면 열매를 맺는 나무에 수액이 풍성해집니다(로마서 8:11).
그리고 넘치는 물이 있습니다(에베소서 5:18).
성경 전체에서 성령은 물로 비유됩니다.
물의 작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물은 공기 다음으로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필수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사람의 숨결입니다.
그리고 이 숨결조차도 영이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콧구멍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인간은 생령이 되었다고 읽었습니다.
영이 없는 육체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임스 말)
사람이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몸의 85%가 수분입니다.
사람은 물 없이 사는 것보다 음식 없이 사는 것이 더 오래 살 수 있습니다.
그 유사성은 적절하고 매우 생생합니다.
사람에게는 (빵이 필요하기 전에) 성령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그 자체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한 순간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3)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몸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은 것입니다.
육신에서 태어난 것은 육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태어난 것은 영입니다.
이것이 바로 폭동입니다.
그렇게 진행됩니다.
이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경우에 왜 그런 일이 사실이 아닌지에 대한 사과 또는 알리바이.
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공기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성경은 악인을 쟁기질하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합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길을 갈 때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집니다.
정당한 업무가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악인을 쟁기질하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합법적인 쟁기질은 합법적인 작업입니다.
쟁기질은 합법적인 작업입니다.
정당한 노동은 당신을 천국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왜 그러지 않는지 아세요?
여러분의 작품이 여러분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가족을 키우고 빚을 갚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천국 입성권과 자유 여권을 얻었습니다.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목숨이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먼저 검색하세요.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그리고 물은 성령의 일종입니다.
물은 클렌징 에이전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말씀으로 너희는 깨끗해졌다. (요한복음 15:3)
고린도전서 6장에서 성령은 신자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이 전부는 아닙니다.
물은 단순히 클렌징이나 정화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물은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끔찍한 파괴력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해일에 대해 알아보세요.
크라카토아에서 발생한 해일이 시속 300마일의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러 30미터 상공으로 날아간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이 세상에서 흐르는 물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불 자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노아 시대처럼 물이 정말 많아질 때.
기관차 무게의 300배에 달하는 화강암 바위를 싣고 30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은 정화입니다.
성화.
클렌징.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은 영적인 삶을 위해 필요합니다.
성령이 없는 영적인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매일 성령의 충만함 없이 주님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형제 중 한 사람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저를 채우소서, 성령으로 저를 채우소서."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지 마세요, 누출됩니다."
우리 모두 어딘가에 구멍이 있을 겁니다.
가끔 펑크가 나면 전압이 약간 손실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원과 배터리가 모두 소모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제단에서 끊임없이 배터리를 채우거나 재충전하는 것입니다.
이번 세션과 이전 세션에서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세션은 50번 세션입니다.
성령 세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 레슨도 두 레슨에 걸쳐 진행됩니다.
각 30분씩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세션의 다음 단원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때 우리와 함께하세요.
그때까지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말씀 안에서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