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51부.
2024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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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하나님의 날을 축하합니다.
오늘 수업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친구들에게 축복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화적인 권면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첫 번째이자 주된 목적은 교리를 위한 것이지 느낌이나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션에서는 주제의 교리적인 내용을 다루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이번 주 주제는 성령세례에 대한 논의의 연속입니다.
특히 에베소서 4장과 로마서 6장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성령세례에 대해 흔히 잘못 적용되는 두 구절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오순절과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세례에 대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다른 두 구절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과 로마서 6장입니다.
이 두 구절은 다양한 이단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세션에서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는 구원받은 직후 성령의 인도하심과 주권에 굴복하고자 할 때입니다.
이때 이단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어떤 이단을 만나느냐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하지만 어떤 이단들은 너무 악랄해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는 이단들이 거의 국가 조직에 가깝고 재정과 사업가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이나 수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감히 성경을 믿지 못합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진리를 믿기 위해 미신을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 그들 중 일부는 새 신자가 특정 방식이나 특정 사람에게 세례를 받지 않으면 실제로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후에는 세례를 제대로 받더라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알려줍니다.
이것은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매우 금욕적인 속임수입니다.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
그들에게 말해보세요.
"형제여, 당신은 세례를 잘못 받았어요. 이런 식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남자가 그렇게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아직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세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번은 그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말했죠.
제가 말했죠.
"설교를 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가 말했죠.
"22년".
제가 말했죠.
"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왔습니까?"
그가 말했다.
"저는 '그들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하리라'고 말해왔어요."라고요.
그들은 모두 같은 발음과 입 뒤에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럼, 당신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믿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회개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네."
제가 말했습니다.
"자백하셨습니까?"
그가 말했다.
"네."
내가 말했다.
"믿으셨습니까?"
그가 말했다.
"네."
나는 말했다.
"세례 받으셨어요?"
그가 말했다.
"네."
내가 말했죠.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그가 말했다.
"그러길 바라요."
말도 안 되지 않나요?
제가 방금 한 말을 분석해 보셨나요?
22년 동안 사람들에게 구원받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정작 자신은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도 몰랐던 사람이 있었어요.
대단하지 않나요?
여기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는 방법을 네 가지로 요약해서 알려주면서 정작 자신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어렵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상상할 수 있을까요?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남자가 저런 남자를 부양하기 위해 접시에 돈을 넣는다고 상상할 수 있나요?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여기 22년 동안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남자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22년 동안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면 자신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 월급을 준다는 게 상상이 되나요?
자동차 뒷유리를 깨뜨린 치과 의사에게 돈을 지불하시겠어요?
배관공이 와서 집의 모든 전등 소켓을 뜯어낸 대가로 돈을 지불하시겠어요?
사람들은 참 이상하죠.
좋아요.
첫 번째는 마가복음 16장을 문맥에서 빼고 베드로전서 3장 21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과 로마서 6장을 잘못 적용합니다.
두 번째는 새로 개종한 사람에게 방언을 하지 않으면 성령이 없고 구원받지 못했다고 설득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은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은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목록에 있는 은사 중 하나일 뿐이며 모든 신자에게 약속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이 분명히 모든 사람이 은사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도 은사가 없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입니다.
이는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지난 3개월 동안 저희와 함께 하셨다면.
사도행전 2장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첫째, 거기에는 기독교인이 없습니다.
둘째, 모든 개종자들은 구약의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참석자 모두는 수염을 기르고 안식일을 지키며 성전에서 할례 받은 돼지고기를 숭배하고 율법에 따라 금욕하는 유대인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종자들은 방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교하는 사도들은 죄 사함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서서 그것이 구원의 계획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사도행전 2장 38절에 나오는 물을 너무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5절까지 방언을 너무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갈라디아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사도행전 2장으로 안내해야 하는데 사도행전 15장으로 안내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4~6장으로 안내해야 할 때 사도행전 19장 1~5절로 안내합니다.
이제 에베소서 4장 5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읽습니다.
한 주님.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세례.
어떤 사람들은 물과 성령의 세례가 적어도 두 번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인가요?
신의 마음속에서?
고린도전서 12:13.
성령 세례는 진정한 세례입니다.
결국 물세례는 여러분의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장 21절).
결코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가복음 16장에서 '세례'라는 단어가 구원받는 것과 한 번 연결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나오는 구원받은 한 번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따르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장 16절에서 '세례'라는 단어가 '구원'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지적하지 않은 점입니다.
"세례"라는 단어는 영생 중생 칭의 구속 또는 거듭남과 결코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제 물은 결코 새로운 탄생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면 그들은 즉시 말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6절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물'이라는 단어가 물세례에 대한 언급이라고 설득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워터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즉, 그는 '세례'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물'을 떠올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물을 찾을 때마다 "세례"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3장 3절부터 8절까지를 보면 '세례'라는 단어가 문맥상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과 에베소서 5장에서 '물'이라는 단어가 문맥상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에 "세례"라는 단어를 추가합니다.
비록 존재하지 않더라도요.
그리고 로마서 6장에서 "세례"라고 적혀 있는 곳에 "물"을 추가합니다.
비록 존재하지 않더라도요.
에베소서 4장에는 어떤 방향에서든 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의 세례가 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이라는 용어는 로마서 6장의 5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로마서 6장이 물세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밝혀진 지 오래입니다.
로마서 4장에 나오는 에베소서 6장의 세례가 물이라고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손전등으로 그 구절의 15페이지 안에 물을 찾을 수 없는 경우.
구실의 맥락이 없는 텍스트입니다.
이제 에베소서 4장이 물세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결정하고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두 번째 그룹을 상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즉시 팝업됩니다.
그들이 알려줄 것입니다.
"그게 성령세례라면 방언을 하지 않으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며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가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성경이 연구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구원을 의심합니다.
죽는 날 구원을 의심하고 싶다면 그 사람들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남은 생애 동안 당신이 똑바로 서 있는지 거꾸로 서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 혼란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욕조에 가보지 않으면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또는 두 번째는 성령이 없었고 방언을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거짓 가르침에 속아 그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들과 똑같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현재 소유물로서 영생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의식인 물 세례.
고린도전서 12장 3~13절의 세례가 일어난 것은 지상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령 세례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에베소서 5장 30절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몸과 살과 뼈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그분의 살과 뼈의 지체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연합한 사람은 한 영입니다. (고린도전서 6:17)
이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구원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셨고, 우리는 그분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입니다.
그는 우리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의 몸 안에 있습니다.
우리 중 한 명이 지옥에 갈 수 있다면 말이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훼손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고난을 받으셨고 다시는 고난을 당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손과 발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구멍이 뚫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거듭난 사람들은 한 번의 세례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셨을 때 우리는 그의 뼈 중의 뼈가 되고 살 중의 살이 되었습니다.
신체의 일부입니다.
그의 손.
그의 눈과 발.
우리가 지옥에 갈 수 있다면 그의 일부도 지옥에 갈 것입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나오는 성령세례에 대한 개요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장 3~11절은 성경에서 성령세례에 대한 유일한 정의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실천하는 한 가지 행위.
신자는 우선 성령으로 태어났습니다(요한복음 3:3~8).
그들은 성령의 서약의 간절함을 받습니다(에베소서 1:14).
그들은 성령으로 인봉되었습니다(에베소서 1:13 및 에베소서 4:30).
그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습니다(로마서 8:9).
그리고 그들은 한 몸으로 세례를 받습니다(고린도전서 12:13).
만약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람들을 속이려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태어납니다(요한복음 3장).
그는 성령의 간절함을 서약으로 받았습니다(고린도후서 1:22).
그는 성령으로 인봉되었습니다(에베소서 4:30).
성령이 내주하십니다(로마서 8:9).
그리고 한 몸이 되어 세례를 받습니다(고린도전서 12:13).
이제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거듭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신도들의 불안정한 마음을 이용해 쇼를 벌이고 생계를 유지하려는 가짜 이단들도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성령의 탄생으로 영생에 이르는 입문을 하게 됩니다.
그는 성령의 간절함을 받아 영생의 절정을 이루겠다는 서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인침을 받음으로써 영생이 계속되는 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영혼에 영생이 유지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 외의 가르침은 성경적이지 않고 비성경적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저주하기 위해 문맥에 맞지 않게 성경을 잘못 인용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악마는 성경을 인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인용하는 악마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간단합니다.
구절을 찾아보세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성경을 펼쳐서 확인해 보세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3절부터 11절까지에 따르면 이 세례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로마서 6장 3절에 따르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 세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로마서 6장 4절은 우리가 그의 장례에 참여하여 세례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6장 5절은 우리가 주님의 부활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6장 8절에 따르면 우리는 주님의 부활하신 생명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제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이 있을까요?
이거 물인가요?
물이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물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4:24)
여러분을 물속에 집어넣고 싶지 않으세요.
어떤 육체를 가지고 있는지 아세요?
그것은 당신을 살아있게 합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어떤 상황으로 인도하는지 아십니까?
정신으로.
하나님의 하늘 아래에서는 물세례로 어떤 신자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가 연결된 것은 유대인의 절기인 오순절이 유일했습니다.
이 경륜의 시대가 시작된 후, 성령께서 베드로의 유대인 세례를 받아들일 때 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셨을 때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이스라엘에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세례 요한의 세례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위한 세례.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물은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넣을 수 없습니다.
물 세례를 받으면 호수나 도시 상수도의 수영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악한 마음으로 돌아선 장로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화 있을진저, 어떤 모양이나 형태로든 물세례가 영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게 하여 영혼을 저주하는 소경 중의 소경이여, 화 있을진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천국에 간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로마서 6장 3절부터 11절까지의 한 번의 세례는 물세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부터 12장까지 어디에도 '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이라는 단어가 로마서 6장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데도, 눈에 보이는 한 6장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는 비난받는 장로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적인 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경고합니다.
특히 성경 교리를 공부하는 학생은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해석으로 당신의 미래를 말하려는 사람은 화 있을 것입니다.
성경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아닌데도 자신이 원하는 의미로 사적으로 해석하여 천국(미래)에 갈 것인지 지옥(미래)에 갈 것인지 말하려고 하는 사람은 화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적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눈먼 회중에게 에베소서 4장의 세례가 물이라고 말하는 눈먼 지도자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부터 6장까지 어디에도 '물'이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신'이라는 단어는 책 전체에 걸쳐 문맥에 등장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라는 단어는 신약성경 어디에도 거듭남과 관련하여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어디에도 '세례'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3~6절에서 '세례'라는 단어를 읽는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성경을 왜곡하고 인간의 영혼을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왜곡하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들의 입장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저는 심판의 날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로마서 6장 1절부터 6절까지 '물'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로마서 1장부터 12장까지 어디에도 '물'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말이죠.
여러분은 사적인 해석 시스템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머니를 노리고 자신의 사적인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이 세우고 구축한 사적인 교리 체계입니다.
로마서 6:1-4에서 "물"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자신의 파멸을 위해 성경을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이라는 단어는 해당 장의 양쪽 거의 모든 장에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장에서.
한 번의 세례.
에베소서 4장 5절.
그러므로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는 것은 성령입니다.
신자는 그의 죽음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신자는 장례식장에서 세례를 받으므로 시신과 완전히 동일시됩니다.
그는 부활의 세례를 받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여 새 생명을 누리며 새 몸으로 들어가신 예수님.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와 함께 사는 것, 현재의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따라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의 경험은 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는 구세주와의 완전한 동일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절에 언급된 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언급된 물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네?
물?
아니, 마셔요.
몰입하지 마세요.
음료.
물.
욕조.
도시의 물.
세례 글꼴?
마셔요, 친구.
뭘 마셔요?
하나의 정신으로 마셔보세요.
따라서 음료에 물이 암시되어 있긴 하지만.
고린도전서 8장부터 16장까지 어디에도 물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생활 습관으로 만들어 보세요.
남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