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신학 세미나 : 53부.
2024년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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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좋은 하루 되세요.
지난 몇 주 동안의 수업은
성령론, 즉 성령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이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해 몇 달 동안 공부해 왔습니다.
오늘은 53과로 성령의 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의 대조와 관련하여 우리가 말한 내용을 간단히 복습하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신자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5:1-6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 또는 포도송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열매를 맺을 때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을수록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매를 맺는 씨앗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씨앗이 혼자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부엌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옥수수 알갱이를 땅에 묻어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면 절대로 줄기로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땅에 묻어 죽게 내버려두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씨앗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씨 뿌리는 자와 씨에 대한 비유를 들려줍니다.
그는 씨 뿌리는 사람이 내려가서 그 씨를 던진다고 말했습니다.
그 씨앗 중 일부는 열매를 맺고 일부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씨앗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립니다.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씨 뿌리는 자와 씨의 비유에서.
모든 열매는 씨앗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거부하는 곳에는 위조된 열매와 위조된 선물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것을 매우 명확하게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거부하는 곳에는 누가복음 23:33이 현대 배교자의 현대적 움직임에 맞게 변질된 곳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위조되어야합니다.
이제 이것은 가장 큰 대학에서 생산 한 특이한 인공 기독교를 설명합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이 사람들을 상대 한 적이 있다면.
그들에 대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리가 인위적인 거룩함이라고 부르는 것, 즉 강제적 인 경건입니다.
당신은 그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빛과 광택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만 발로 차면 베니어가 떨어져서 바닥에 흩어집니다.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선자는 성령의 열매가 없는데도 성령의 열매를, 성령의 은사가 없는데도 성령의 은사를 위조하려고 합니다.
한 번만 발로 걷어차면 풀려날 것입니다.
한 번은 예배가 끝나고 한 사람이 저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 형제여, 우리는 그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합니다. 우리는 당신과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요. 교리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여러분을 사랑할 뿐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성령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례를 받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혁명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익숙한 대사죠?
하지만 들어보세요.
그 늙은 위선자들이 말할 때, 그들은 늑대의 턱에서 침을 흘리는 것처럼 경건함이 몇 킬로미터씩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이해가 안 돼요. 하지만 성령이 제게 임하셨을 때 성령이 저를 이겼습니다.
제 인생에 혁명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거짓말을 하는 건가요?
"네, 저도 그랬어요."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기반을 둔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죠.
그게 다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기반을 두고 있다면 흔들기 기계로 흔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죠.
나무에 매달린 인공 과일이라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이 공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의 배교적 근본주의자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2장을 보십시오.
은사의 종류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8-10.
우리는 지혜의 은사를 발견합니다.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분별력.
방언.
그리고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방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작은 은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은사에 매몰되어 성령의 열매를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이 은사들을 주시고 이 은사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적은 은사는 당연히 방언이었습니다.
방언은 항상 목록의 맨 아래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방언은 우연하게도 순서상 최하위일 뿐만 아니라 위신에 관한 한 최하위입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을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몇 가지를 세우셨습니다. 첫째, 사도들입니다.
주문이 표시됩니다.
둘째, 예언자.
주문이 표시됩니다.
셋째, 선생님들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방언을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영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선물이 가장 적습니다.
기적.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습니다. (고린도후서 5:7)
따라서 눈에 보이는 대로 걷는다면 사다리를 많이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치유의 선물.
도움.
정부.
방언의 다양성.
하단 선물.
기독교인이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방언입니다.
그게 가장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Paul이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2:31).
그는 혀를 얻으려고 5분을 낭비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위대한 성경 변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와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얻었을 때 신이 누구에게나 준 가장 위대한 것을 가진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것은 옛 본성, 즉 육적인 고린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고의 선물을 탐내세요.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이것은 명령의 계명이었습니다.
의무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입니다.
계명은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그것은 계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계명만큼이나 중요한 계명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세요."
그 계명은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탐하라"고 했습니다.
최고.
그리고 방언은 30절의 목록에서 맨 아래에 있습니다.
28절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10절의 목록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37절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이 주님의 계명임을 인정하게 하십시오.
자, 여러분.
왜 하나님께 죄를 짓고 계명을 어겼나요?
하나님께서 탐내지 말라고 하신 선물을 탐내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경건한 얘기를 해줬던 그 악동은 어디 있죠?
하나님께 죄를 짓고 주님의 계명을 어기게 만든 그 더러운 악당은 어디에 있나요?
고린도전서 14:37.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이 주님의 계명임을 그가 인정하게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2:31.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죄를 폭로했다고 화내지 마세요.
그것이 설교자의 일입니다.
그리고 허위 사실을 폭로한 저에게 화내지 마세요.
그것은 선생님의 일입니다.
저는 28년 동안 성경 교사이자 전도 설교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것이 제 평생의 업적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은 가장 좋은 선물을 탐하지 말고 가장 작은 선물을 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 37절에 바울이 쓴 것은 주님의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잃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가장 큰 질문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알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28.
사도가 되기에 적합한 은사.
예언자.
교사.
기적의 일꾼.
힐러.
헬퍼.
관리자.
또는 언어학자가 이 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부터 6절까지는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전도의 은사.
목회적 은사.
그리고 사역의 은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은사는 바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는 속성 또는 사물입니다.
로마서 12장 6~8절은 하이퍼 카리스마가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몇 가지를 더 추가합니다.
권면의 선물.
나눔의 선물.
통치의 선물.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선물.
대체로.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 및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목록을 세어보세요.
24가지 성령의 은사가 있습니다.
선물은 주권적으로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11.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각자의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새 회심자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두십니다.
이에 대해서는 성령 세례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체의 특정 위치에 그를 적절하게 부여합니다.
특히 에베소서 2장 21~22절에 주목하세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신의 특권입니다.
그는 위치를 선택하면서 새로운 세포가 몸에 자라도록 계속 만들고 맞추고 있습니다.
선물은 온 몸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
성령의 현현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주어집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세포를 가장 유용하고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신자에게 추가되는 새로운 은사로 인해 온 몸이 유익을 얻습니다.
인체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없습니다.
부록에 기능이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도 쓸모없는 드론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사람이 거짓 은사로 자신을 자랑하면 비 없는 바람과 구름과 같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없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기생충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회심은 단순히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받는 세례(고린도전서 12:13).
그것은 우리가 몸에 도움이 되고 축복이 되어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부정적인 의미)에서만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우리를 올려놓으셨습니다(긍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여러분이 그 안에 배치되고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합니다.
선물은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1.
Paul이 말합니다.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구절을 공부하면서 알 수 있듯이 구절에서 가장 좋은 것은 12장 8절에서 찾을 수 있는 목록의 맨 위에 있는 것들입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고린도전서 12장 8절의 목록에서 가장 위에 있는 두 가지입니다.
다음으로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의 두 번째 목록은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29절의 다음 목록에 있는 두 사람은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세 가지 목록 모두에서 가장 적거나 가장 작거나 가장 중요하지 않은 은사가 방언의 은사라는 점에 유의하세요.
이제 이것은 매우 중요하거나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 어떤 선물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그 한 가지 선물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선물이 맨 밑에 있다고요?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누군가가 틀렸다고 의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은사를 주신 성령의 말씀에 따라.
방언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방언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방언은 가장 중요하지 않은 선물일 뿐입니다.
성령은 이 사람들이 하는 일과 반대되는 글을 썼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무지 속에서 그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선물은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고의 선물을 간절히 원합니다.
복수형.
여기서 만족하지 마세요.
최고의 상품을 찾아보세요.
지혜.
지식.
예언 능력.
사도의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물론 선물은 각기 다른 용도로 다른 시기에 제공됩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처음 시작되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존재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나중에 사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임스의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눈치채셨죠?
사도행전 12장을 읽어보셨나요?
제임스가 목이 잘렸을 때 대체품이 무엇으로 선택되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대체품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는 유다를 대신할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는 야고보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사도의 표적이 여러분 가운데서 역사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많은 은사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Paul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하나님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식으로, 다른 하나는 저런 식으로. (고린도전서 7:7)
그리고 선물은 반드시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재능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일깨우세요. (디모데후서 1:6)
이러한 선물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표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장 22절로 넘어갑니다.
유대인에게는 표식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인에게 표징이 필요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8.
성령께서 지혜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표징이 아닙니다.
같은 성령으로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은 표적이 아닙니다.
같은 성령에 의한 믿음입니다.
그 다음 세 가지 선물은 지혜 지식과 믿음입니다.
상위 세 가지 선물은 표지판이 아닙니다.
9절.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한 성령의 치유의 은사가 주어집니다.
치유는 분명한 신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서 우리가 읽은 이유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그들이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주의하세요.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적 표적은 기도 없이도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안수하는 은사였습니다.
기도 요청이나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든 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하리라.
오늘날 이 땅에는 사도들과 같은 치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적 표징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는 교회나 텐트에서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침대에서 침대로 옮겨 다니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하루 10시간씩 그 일을 했습니다.
그가 정직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손을 얹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사람들은 회복될 것입니다.
제가 텐트에서 설교를 하거나 인터넷에 접속하는 데 5분을 낭비할 것 같나요?
잘 들어보세요.
저는 모든 병원의 암 병동을 다니며 평생을 보냈어요.
그리고 저는 한 달 만에 지금까지 살아온 어떤 치료사보다 더 많은 치료 결과를 얻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속지 마세요.
성경을 공부하세요.
10절.
또 다른 기적을 위해.
이스라엘을 향한 계시.
또 다른 예언을 위하여.
신호가 아닙니다.
또 다른 분별력 있는 영혼을 위하여.
신호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딘가에 가서 무릎을 꿇고 모든 개인적인 경험을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고 이렇게 말하세요.
주님, 이제부터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를 가르쳐주세요.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세요.
주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경외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세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당신이 의미하는 것을 말하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희망과 믿음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과 의로 세워지게 하소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적나라한 말씀에 제 영혼을 걸고 하나님은 참되시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오늘부터
제가 눈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